로맨스 화장품: 당신의 표정이 물들 때
처음 만난 날, 그녀의 립스틱이 커피잔에 남긴 자국처럼 내 기억에 선명히 찍혔다. "언제부터 화장품 개발자셨어요?" 내가 묻자 지민은 웃으며 말했다. "감정을 담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매일 아침 자신에게 무언가를 발라주는 의식에는 마법 같은 게 있거든요."
우리는 그렇게 데이트를 시작했다. 박물관, 재즈바, 한강변 산책까지. 지민은 항상 조금씩 다른 화장품을 가지고 다녔다. "오늘은 '희망'이에요," 그녀가 말하며 연한 핑크빛 립밤을 바르면, 정말로 그녀의 입술에서 봄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이건 '위로'예요," 부드러운 브라운 섀도우를 눈가에 얹으면, 그 눈동자가 따스한 품을 주는 것 같았다.
사랑에 빠진 건 지민이 아니라 그녀가 만든 감정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지민의 연구실은 투명한 병들과 색소들, 향기로운 오일들로 가득했다. 그녀는 거기서 매일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냈다. 치유, 위안, 열정, 자신감. 그렇게 사람들의 얼굴에 발라주는 감정들.
"당신을 위한 건 아직 못 만들었어요," 3개월 째 되는 날, 지민이 말했다. "로맨스라는 감정은 너무 복잡해서..."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녀의 립스틱 맛은 달콤했지만,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왜일까? 내가 사랑하는 건 그녀일까, 아니면 그녀가 만든 감정들일까?
"내일 아침, 화장 안 하고 만날 수 있을까요?"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이내 풀렸다. "그럼요. 가면을 벗을 시간이네요."
다음 날, 맨얼굴의 지민은 낯설었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소리, 생각의 깊이, 가끔 흘리는 눈물의 진실함은 어떤 화장품보다 강렬했다. "실은 고백할 게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제가 만든 화장품엔 실제로 감정이 들어있지 않아요. 그건 사람들이 자신 안에 이미 가지고 있던 감정을 일깨울 뿐이죠."
그녀의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사랑한 건 결국 화장품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표현된 지민의 진심이었다. "그럼 로맨스는요? 그건 어떻게 만들어요?"
지민은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에 열이 올랐다. "로맨스는 만들 수 없어요. 그건..."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이 함께 발견하는 거죠."
지금도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지민은 화장대 앞에 앉아 자신의 얼굴에 다양한 감정을 그려 넣는다. 때로는 '용기', 때로는 '평온', 그리고 가끔은 '로맨스'라는 이름의 새 제품을 시험해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녀가 화장을 지우고 베개에 머리를 뉘일 때, 맨얼굴로 나를 바라볼 때, 그때 비로소 우리만의 진짜 로맨스가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