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로맨스: 우리가 숨긴 것들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오는 순간, 회사 전체의 공기가 달라졌다. 나는 무심한 척 휴대폰을 내려다보았지만, 향수 냄새가 내 감각을 사로잡았다. 라벤더와 바닐라, 그리고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그녀만의 향기. 38층까지 가는 60초가 때로는 영원처럼, 때로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오늘 기획안 검토해주셨나요, 부장님?"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공손했지만, 그 밑에 깔린 은밀한 떨림을 나만 알아차렸다. 우리의 비밀이 시작된 지 3개월째였다.
"메일로 보냈어요, 김 과장." 나는 너무 딱딱하게 대답했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이 엘리베이터 안을 가득 채웠다. 누군가 우리의 관계를 눈치챌까 봐 항상 조심했다. 회사 로비의 CCTV, 동료들의 수군거림, 인사팀의 예리한 눈초리. 모든 곳에 함정이 있는 것 같았다.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회의실에서 그녀는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자신감 있게 숫자를 분석하고, 날카로운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대답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그녀를 향한 마음을 꾹꾹 누르는 일이 매일 반복되는 고문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김 과장이 총괄하게 됐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내가 발표했을 때, 동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누군가는 의아해했고, 누군가는 불만을 품었다. 그것이 내 감정에서 비롯된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그녀를 더 엄격하게 대했다.
야근 끝에 텅 빈 사무실. 그녀의 모니터 불빛만이 어둠을 밝혔다. "아직도 일해?" 내가 물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만의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밤 풍경이 우리의 배경이 되었다. 형광등이 꺼진 공간에서 그녀의 눈동자는 더욱 깊게 빛났다.
"이렇게는 못하겠어요."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매일 다른 사람인 척하는 거, 너무 지쳐요."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리 관계는 시작부터 종착역이 정해져 있었다. 승진, 평판, 경력...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는 온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사표를 제출했다. 모두가 놀랐고, 이유를 물었다. "더 나은 기회를 찾아서"라고 대답했지만, 진실은 달랐다. 나는 그녀의 미래를 선택했다. 떠나는 사람은 나여야 했다.
한 달 후, 퇴사 마지막 날. 그녀는 로비에서 나를 기다렸다. "왜 그랬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대답 대신, 나는 그녀의 손에 쪽지를 쥐여주었다. 그곳에는 새로 차린 내 회사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제 우리는 동료가 아닌, 다른 관계로 시작할 수 있었다. 회사 로비를 빠져나오는 내 뒤로, 유리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