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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영상

보드게임의 영상: 움직이는 룰

체크무늬 보드 위에 말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세 번째 라운드에 접어들 때였다. 처음에는 내 눈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동그란 테이블 위, 전구 불빛 아래서 말들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서서히 자신의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듯했다. 나는 잠시 다른 플레이어들의 표정을 살폈지만, 아무도 이상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너 차례야," 진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손가락으로 보드를 가리키는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들도 보고 있었다.

주사위를 굴렸다. 6이 나왔다. 내 빨간 말을 집어 여섯 칸을 옮기려는 순간, 말이 내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져 나와 스스로 네 칸을 움직였다. 차가운 플라스틱 감촉이 여전히 손끝에 남아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바닐라 향초와 진우의 땀 냄새가 섞인 공기가 폐로 들어왔다.

"방금... 봤어?" 내가 물었다.

세 명 모두 침묵했다. 그때 선영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보드 위에 올려놓고 녹화를 시작했다. 영상을 찍기 시작한 순간, 모든 말들이 얌전히 제자리에 멈춰 섰다.

"미쳤나봐," 선영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모두 피곤한가 보다."

게임은 계속됐다. 하지만 녹화가 끝나고 스마트폰이 테이블에서 사라지자마자, 말들은 다시 자신들의 리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말을 건드리지 않았다. 게임은 스스로 진행됐다. 가장 이상한 점은 모든 이동이 룰에 완벽하게 부합했다는 것이다. 마치 보드게임이 우리에게 정확한 규칙을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진우가 다시 녹화를 시도했지만, 카메라가 켜지는 순간 말들은 언제나 정상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날 밤 다섯 게임을 더 했다. 모든 게임에서 보드는 살아있었고, 모든 영상 속에서는 죽어있었다.

한 달 후, 우리는 이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선영은 다양한 각도에서 녹화를 시도했고, 진우는 적외선 카메라와 열 감지 장비까지 동원했다. 그 어떤 기계도 보드게임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다. 영상 속에서는 언제나 우리가 말을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아침, 진우의 문자를 받았다. "중고상점에서 새 보드게임을 찾았어. 오늘 밤에 만나자." 그의 문자에는 게임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화면을 응시하던 나는 경악했다. 영상 속에서도 말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보드 가장자리에 앉아 게임을 지켜보는 작은 인형들 사이에 우리 넷의 모습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 만난 적 없는 게임인데도.

나는 이제 모든 게임이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보드게임을 플레이할 때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우리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밤, 우리는 새 게임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우리가 말이 되어 누군가의 영상 속에서 움직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