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비밀 로맨스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한 건 장례식 다음 날이었다. 세월의 때가 묻은 가죽 표지, 누렇게 변한 페이지 사이로 아직도 꽃향기가 났다. 처음 본 엄마의 글씨체는 내가 알던 것보다 더 날카롭고 생기 있었다. "오늘, 그를 다시 만났다." 첫 페이지에 적힌 문장이 내 심장을 멈추게 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늦봄 햇살 아래, 나는 엄마의 숨겨진 과거를 한 페이지씩 넘겨보았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과 오래된 잉크 냄새가 마치 타임머신이 되어 나를 30년 전으로 데려갔다.
"그의 웃음소리는 여름 폭풍우 속 번개처럼 갑작스럽고 강렬했다. 그가 있는 공간은 언제나 따뜻했다." 내가 알던 무표정하고 조용한 엄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문장마다 감정이 넘쳐흘렀다. 사랑에 빠진 젊은 여자의 일기였다.
일기는 계속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A와의 약혼을 깨뜨릴 용기가 없었다." A는 아버지의 이니셜이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가 알던 부모님의 이야기는 단지 표면에 불과했다. 그들의 결혼 뒤에는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복잡한 감정의 그물이 있었다.
"오늘, 그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해외로 떠난다. 아마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아이를 가졌다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그 문장 아래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내 생일보다 정확히 9개월 전이었다.
손이 떨렸다. 거실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눈은 항상 따뜻했지만, 어쩐지 슬픔을 간직한 듯했다. 그는 알고 있었을까? 나를 키우면서도, 내가 자신의 핏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을 때,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A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나를 선택했다. 그는 자신이 불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게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의 아이를 자신의 것처럼 사랑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선택이 아닌 운명이라면, 우리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일기장을 덮으며, 내 안에서 뭔가가 자리를 잡아갔다. 분노도, 배신감도 아닌 이상한 평온함이었다. 어쩌면 사랑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혈연보다 선택의 힘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그날 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목소리는 늘 그랬듯 차분했다. "아빠," 내가 말했다. "우리 이번 주말에 만날 수 있을까요?"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마도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무슨 질문을 할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30년 동안 기다려온 대화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