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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대표님

비밀의 대표님

회의실 창문에 투영된 내 그림자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비서로서 9년, 늘 완벽했던 내가 대표님의 서랍을 뒤지고 있다니. 손끝이 떨렸다. 하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다음 주 이사회 전에 그 계약서를 찾아야만 했다.

"박 비서님, 뭐 하세요?"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등 뒤에서 들려온 대표님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웠지만, 오늘따라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느리게 몸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다음 주 이사회 자료를..."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강지훈 대표님의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항상 넥타이 매무새가 완벽했던 그가 오늘은 와인 얼룩이 묻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자료는 내 컴퓨터에 있지 않나? 굳이 서랍을..."

대표님이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코끝을 스치는 그의 향수 냄새가 평소보다 진하게 느껴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달콤한 위스키 향이 그의 숨결에 섞여 있었다.

"사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회사를 구하기 위해 대표님의 비밀 계약서를 찾고 있다고? 그의 배신을 증명할 증거를 찾고 있다고?

대표님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듣는 냉소적인 웃음이었다.

"9년이나 함께 일했는데, 이제야 알아차렸군요." 그가 내 옆으로 와서 서랍을 열었다. 비밀번호는 내 생일이었다. "찾는 건 이거죠?"

그가 내민 서류에는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경쟁사와의 인수합병이 아닌, 회사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의 핵심은 바로 나였다.

"박 비서, 당신은 내 오른팔이자 이 회사의 다음 대표가 될 사람입니다. 하지만 먼저, 당신의 충성심을 확인해야 했죠."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의심이 오히려 대표님에 대한 시험이었던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내가 시험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자리까지 오는 데 9년이 걸렸군요." 대표님이 창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비밀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누구에게 비밀을 맡길지 아는 것입니다."

서류를 내려놓았을 때, 내 손가락에 묻은 잉크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대표님의 비밀처럼, 내 피부에 새겨진 작은 흔적. 그 순간 깨달았다. 모든 비밀은 언젠가는 주인을 바꾼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