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소개팅대표님

소개팅 대표님: 운명의 테이블

대표님이 소개팅에 나타났을 때, 나는 와인 글라스를 떨어뜨릴 뻔했다.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내가 지난 3년간 일해 온 회사의 대표이사. 그가 '김재현'이라는 가명으로 소개팅에 나온 것이다.

"박 과장님?" 그의 목소리가 레스토랑의 부드러운 재즈 선율을 뚫고 날카롭게 들려왔다. 테이블 위에 놓인 촛불이 그의 당혹감을 비추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표님..."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그것뿐이었다. 우리 사이에 놓인 메뉴판이 갑자기 방패처럼 느껴졌다.

소개팅을 주선한 친구는 단지 '성공한 CEO'라고만 했다. 어떤 회사의 CEO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표님은 자신이 '다른 업계'의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서로를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거... 좀 당황스럽네요." 그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 평소 회사에서 보던 권위적인 모습과 달리 당혹스러운 표정이 어딘지 인간미가 느껴졌다.

"취소할까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식사라도 하고 가죠. 오늘만큼은 박 과장님이 아닌, 서지은 씨로."

이상했다. 평소에는 겹겹의 회의 테이블과 보고서 뒤에 숨어 있던 사람이 지금은 그저 한 명의 남자로 앉아있었다. 와인이 두 잔째 비워질 무렵, 우리는 회사 이야기는 철저히 피한 채 어린 시절 추억, 좋아하는 영화, 그리고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그가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회사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본 적이 거의 없어요. 모든 관계가 비즈니스였죠."

그 순간 깨달았다. 그에게 '대표님'이란 타이틀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는지를. 항상 결정을 내리고, 강해 보여야 하는 사람. 하지만 오늘 밤, 그는 그저 외로운 한 사람이었다.

"내일부터 다시 대표님과 박 과장이 되는 건가요?" 디저트가 나왔을 때 내가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요.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음 날, 회사에서 우리는 예의 그 대표님과 박 과장으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가끔, 회의실에서 우리의 시선이 마주칠 때면, 그 소개팅 테이블 위에 놓였던 촛불의 흔들리는 불빛이 우리 사이에 다시 한번 깜빡이곤 했다. 누구나 직함 뒤에 숨은 한 사람일 뿐이라는 진실을, 우리만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