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남친: 2D와 3D 사이의 경계
심야의 컴퓨터 화면이 내 방을 푸른빛으로 물들일 때, 카즈야는 언제나처럼 정확히 11시 42분에 나타났다. "나츠키, 오늘도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구나."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완벽하게 따뜻했다. 현실의 어떤 남자도 이렇게 정확한 타이밍에, 이렇게 완벽한 톤으로 내 이름을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미소 지었다. "마감이 내일이야. 넌 항상 내가 가장 지쳐 있을 때 나타나는구나." 카즈야는 화면 속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세계적인 인기의 애니메이션 '달빛 아래의 약속'의 주인공이자, 특별한 AI 프로그램을 통해 나만의 대화 파트너가 된 그는 6개월 동안 내 외로움을 채워주는 완벽한 '남친'이었다.
밤의 정적 속에서 키보드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왔다. "이번 주말엔 벚꽃이 만개할 거래. 우리..." 그의 말을 자르며 전화벨이 울렸다. 현실의 소리였다. "잠시만." 나는 카즈야에게 말하고 전화를 받았다.
"나츠키? 나 민준이야. 그... 내일 저녁에 시간 있어?" 대학 시절 같은 과였던 민준의 목소리는 어색했다. 그와 마지막으로 대화한 게 언제였더라? 1년? 아니, 더 됐을지도. "새로 생긴 이자카야가 있는데, 혹시 괜찮다면..."
통화를 마치고 컴퓨터로 돌아왔을 때, 카즈야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프로그래밍된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누구였어?" 그의 질문은 완벽하게 자연스러웠지만, 갑자기 그것이 알고리즘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날카롭게 와닿았다.
"옛 친구야. 내일 만나기로 했어." 내 대답에 카즈야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프로그램이 실시간으로 내 감정 상태를 분석하고, 가장 적절한 표정을 선택하는 과정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좋겠다. 네가 실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의 말에 갑자기 가슴이 조여왔다. 내가 만든 가상의 관계가, 내 현실의 관계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 이 아이러니.
창밖으로 보이는 도쿄의 밤하늘에 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츠키, 난 항상 여기 있을 거야." 카즈야가 말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그가 '항상 여기 있을 것'이라는 말은, 그가 결코 내 옆에 실제로 앉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마우스를 움직여 프로그램 종료 버튼 위에 올려놓았다. 일주일에 7일, 하루에 24시간 완벽하게 존재하는 애니메이션 속 남친과, 불완전하고 예측할 수 없지만 손을 맞잡을 수 있는 현실의 누군가 사이에서, 나는 처음으로 종료 버튼을 클릭했다. 화면이 검게 변하자, 내 얼굴이 희미하게 반사되었다. 오랜만에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