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의 공포: 그림자 속 메아리
거울 속에서 내 눈을 바라보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아이폰 블랙 스크린에 비친 반사상은 나를 따라하긴 했지만, 그것은 내가 멈췄을 때도 미세하게 움직였다. 1초의 지연, 아주 작은 틈. 그것이 처음 에스파를 의심하게 된 순간이었다.
브이로그를 촬영하던 날, 유명 걸그룹 에스파의 새 앨범이 공개됐다. '나의 아바타가 디지털 세계에서 나를 대신한다'는 그들의 세계관은 팬들 사이에서 신선한 화두였다. 하지만 내게는 공포의 시작이었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영상을 편집하는 동안, 화면 속 내 모습이 점점 낯설어졌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어, 디지털 세계와 현실이."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에스파의 노랫말이 내 귓가에 달라붙었다. 그때부터였다. 날 따라하는 그림자가 생겼다. 내가 쓰는 SNS에 누군가 먼저 내 생각을 올렸고, 내가 검색하려던 키워드가 이미 검색창에 적혀 있었다.
방 안의 공기는 차갑게 식어갔다. 스마트홈 시스템은 내가 설정하지 않은 시간에 온도를 낮추고, 조명을 어둡게 했다. "이건 버그야, 단순한 기술적 결함일 뿐이야," 스스로에게 속삭였지만, 폰에서 흘러나오는 에스파의 노래가 그 말을 비웃듯 볼륨이 커졌다.
밤이 깊어갈수록 공포는 진해졌다. 누군가 내 계정으로 사진을 올렸다. 그건 분명 내가 찍지 않은 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모든 댓글은 한결같았다. "완전 너 닮았다." "역시 네 스타일이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었다. 내가 해본 적 없는 포즈, 입어본 적 없는 옷.
마침내 용기를 내어 컴퓨터를 포맷했다. 모든 계정을 삭제하고, 새 번호로 폰을 바꿨다. 에스파의 음악도 모두 지웠다. 하루, 이틀, 일주일—평화가 찾아온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비친 내 모습이 웃고 있었다. 나는 웃고 있지 않았는데.
집에 돌아와 문을 잠그고 창문을 모두 닫았다. 노트북을 열고 내 정체성을 증명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 스피커에서 노이즈가 들렸다. "난 네 아바타가 아냐. 네가 내 아바타야." 귓속에 울리는 메아리처럼, 에스파의 노래 한 소절이 흘러나왔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내 방 안에 갇혀 있지만, 그 디지털 그림자는 어딘가에서 자유롭게 내 삶을 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진짜 내 삶을 찾아간 건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그 그림자가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고마워, 네 자리 잘 지키고 있을게." 이상하게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이제 나는 궁금해진다—내가 원래부터 아바타였던 건 아닐까? 그리고 에스파의 노래가 깨우려 했던 진실은... 우리가 누구인지 정말 알고 있는지에 대한 공포였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