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공포: 그날 밤의 이별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멈춘 것은 그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직후였다. 어둠 속에서 나는 그의 숨소리가 사라진 침대를 바라보았다. 내 옆자리는 비어 있었고, 그의 베개에는 아직 머리카락 자국이 남아있었다. 차가운 이불을 만지자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는 언제 나갔을까. 왜 나갔을까.
부엌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똑, 똑, 똑. 시계의 초침 소리와 겹쳐 들렸다. 침대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가자 발바닥에 닿는 마루의 차가움이 현실감을 주었다. 문득 그가 남긴 편지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서랍, 냉장고, 거울... 어디든 그가 마지막 말을 남겼을 법한 곳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부엌 싱크대 위로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고 있었다. 수도꼭지를 꽉 잠갔다. 그 순간, 내 뒤에서 휴대폰 불빛이 깜빡였다. 화면을 켰다. 오후 3시 27분에 그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
"미안해, 더 이상 못 견디겠어."
창밖은 어둠뿐이었다. 붉은 네온사인이 창문을 물들이며 깜빡거렸다. 이 집이 갑자기 너무 넓게 느껴졌다. 침대로 돌아가려는데 거실 벽에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웃는 얼굴이 담긴 사진. 가만히 보니 그의 눈빛에는 이미 떠날 준비를 마친 사람의 슬픔이 서려 있었다.
벽시계가 새벽 3시를 가리켰다. 시간은 그의 부재를 확인시켜주듯 느리게 흘렀다. 그때, 어디선가 휴대폰 진동 소리가 들렸다. 소파 쿠션 사이에서 그의 휴대폰을 찾아냈다. 화면에는 낯선 이름과 함께 여러 개의 부재중 전화가 쌓여 있었다.
그의 휴대폰을 손에 쥐고 창가로 걸어갔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새벽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우리 집은 13층. 저 멀리 도시의 불빛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자리에 앉아있던 인형이 옆으로 쓰러졌다. 그때 침대 밑에서 종이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떨리는 손으로 주워들었다. 그의 필체였다.
"당신을 사랑했지만, 당신의 공포를 함께 견딜 수 없었어. 어떤 사랑도 그 어둠을 삼킬 수 없더라."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이별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온전히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떠났지만, 진짜 무서운 건 그가 남겨놓고 간 진실이었다. 창밖으로 첫 새벽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공포와 이별 사이, 나는 여전히 홀로 그 경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