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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로맨스

여름의 로맨스: 뜨거운 계절의 차가운 만남

그녀는 여름날의 오후 3시 57분에 내 인생에 걸어 들어왔다. 손목시계의 초침이 정확히 그 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에어컨이 가동 중인 카페 안에서도 그녀에게서는 햇살 아래 달궈진 아스팔트 냄새가 났다.

"이 자리 괜찮을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을 넣은 레모네이드처럼 청량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노트북 화면에는 마감이 5시간 남은 원고의 첫 문장만 외롭게 깜박이고 있었다. '여름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창문 너머로 도시는 아지랑이에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땀에 젖은 이마를 손등으로 닦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반이나 비웠다. 투명한 컵에 맺힌 물방울이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시선이 그 물방울을 좇았다.

"소설가세요?" 그녀가 내 노트북 화면을 흘끗 보며 물었다.

"소설가라기보다는... 글쟁이라고 해야 할까요. 로맨스 소설을 씁니다만, 이상하게도 여름만 되면 한 글자도 써지지 않아요."

그녀는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처럼 투명했다. "로맨스를 쓰는데 여름에 글이 안 써진다니, 재밌네요. 여름은 로맨스의 계절 아닌가요?"

"그게... 진짜 사랑은 여름과 정반대라고 생각해서요. 여름은 너무 직접적이고, 뜨겁고, 단기적이잖아요. 진짜 로맨스는 서서히 데워지는 겨울 스튜처럼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여름이 아니면 절대 핀지 못하는 꽃이 있듯이, 여름에만 가능한 로맨스가 있어요. 일 년 중 가장 긴 낮을 함께하는 설렘, 밤하늘의 별을 함께 세는 낭만... 그런 것들은 다른 계절이 흉내 낼 수 없죠."

그날 이후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만났다. 그녀와 나눈 대화가 내 원고를 채우기 시작했고, 7월의 끝자락에는 완성된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그리고 8월의 첫째 주, 그녀는 말했다.

"내일은 캐나다로 돌아가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났거든요."

가슴이 무너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와의 만남이 진정한 '여름 로맨스'였음을. 짧고, 뜨겁고, 그리고 결국 끝나버리는.

일 년이 지났다. 새 소설의 인세를 받은 나는 캐나다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창가에 앉아 이륙하는 비행기 창문으로 다시 한국의 여름이 시작되는 풍경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진짜 로맨스는 여름에서 시작해 모든 계절을 통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