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과 여사친: 경계선의 춤
스물여섯 해 동안 익숙했던 '여사친'이라는 단어가, 오늘 아침 회의실에서 그의 입에서 나오자 갑자기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졌다. "김주연 씨와는 오래된 여사친 사이니까 솔직히 말해도 되겠지?" 창밖으로 쏟아지는 6월의 햇살이 회의실 테이블 위에서 반짝이는 동안, 나는 얼굴에 미소를 고정시킨 채 침묵했다.
한결 대표는 내가 그저 '여사친'이라고 생각했을까? 대학 동기였던 우리는 스타트업 초기 멤버로 함께했고, 나는 그의 오른팔로서 4년간 회사를 키웠다. 사무실 불이 꺼진 새벽에도 남아 사업계획서를 함께 수정하고, 첫 투자 유치에 실패했을 때 편의점 소주를 나눠 마셨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 모든 순간들이 결국 그에게는 '여사친'의 의미였던 것일까.
"주연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의 목소리가 내 생각을 끊었다. 회의실은 갑자기 너무 좁아진 것 같았다. 다섯 명의 팀장들과 세 명의 이사진이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 향과 새 정장의 풀 냄새가 섞인 공기가 답답했다.
"신규 사업부 인력 재배치 건에 대해서인가요, 대표님?" 비로소 내 목소리가 나왔다. '대표님'이란 단어에 의도적으로 힘을 실었다. 그의 눈에 순간적인 놀라움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나간 후, 그는 문을 닫았다. "언제부터 나를 대표님이라 불렀지?"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공기는 팽팽했다. 갑자기 그가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에 걸린 머리핀을 바로잡아 주었다. 너무 가까워서 그의 숨결이 내 뺨에 닿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우리,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물었다. "당신이 나를 '여사친'이라고 부른 순간부터일까요, 아니면 내가 그것을 문제삼기 시작한 지금부터일까요?"
그는 잠시 침묵했다. 창밖에서는 점심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사무실은 동료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우리 둘 사이의 고요함만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주연아,"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가 신규 사업부 총괄로 너를 추천한 이유는 네가 '여사친'이어서가 아니야. 네가 이 회사의 다음 단계를 이끌 리더라고 생각해서야."
책상 위 투명한 유리컵에 담긴 물에 형광등 불빛이 반사되어 무지개 빛으로 산란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 사이에는 직함과 호칭보다 더 복잡한 것들이 얽혀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여사친'도, 그저 '대표님'도 아닌 무언가를 찾아야 할 때였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내가 물었다. 그의 미소에는 오랜 시간 억눌렸던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새로운 경계선을 그리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