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친 짝사랑: 마음의 경계선
"아무도 널 내만큼 잘 알지 못해."라는 말을 그녀에게 하려다 꿀꺽 삼켰다. 윤재는 커피숍 창가에 앉아 늦어진다는 문자를 보낸 지현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오늘은 꼭 말하리라 다짐했다. 3년 동안 여사친으로 묶여 있던 그 답답한 관계에 마침표를 찍을 작정이었다.
카페 문이 열리고 지현이 들어섰다. 겨울바람에 붉게 물든 볼, 목도리 사이로 새어 나오는 하얀 입김, 그리고 그녀만의 특별한 향기. 윤재는 문득 자신이 언제부터 그녀의 모든 것을 이렇게 세세하게 기억하기 시작했는지 생각했다.
"기다렸어? 미안해, 프로젝트 마감이 늦어져서." 지현이 털썩 자리에 앉으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익숙한 우정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의 직장 이야기, 새로 만난 소개팅 상대 이야기, 그리고 윤재를 '최고의 친구'라고 부르는 그 순간들.
"들어봐, 어제 만난 그 사람이 나한테 고백했어." 지현의 눈이 반짝였다. 윤재는 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애써 무시했다. 매번 이랬다. 그녀의 연애 상담사 역할을 하며 자신의 마음은 뒤로 숨기는 일. "어떻게 생각해?"
윤재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은 달라야 했다. "나 할 말 있어."
"나도! 근데 너 먼저 해봐." 지현이 미소 지었다.
"아니야, 너 먼저." 또다시 물러섰다. 언제나처럼.
"사실... 그 사람한테 답장했어. 우리 사귀기로 했어!" 지현의 목소리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윤재는 미소 지었다. 거짓된 축하를 건네는 자신의 목소리가 마치 다른 사람의 것처럼 들렸다. "축하해. 잘 어울릴 것 같아."
"고마워! 넌 정말 내 최고의 친구야. 그래서 네가 제일 먼저 알려주고 싶었어." 지현이 윤재의 손을 꼭 잡았다. 그 따스함이 오히려 차갑게 느껴졌다.
"그런데 너는 뭐 할 말 있었어?"
윤재는 잠시 침묵했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 그냥 새로 산 노트북 어떤지 물어보려고 했어."
커피숍을 나오며 윤재는 주머니 속 작은 선물 상자를 꽉 쥐었다. 오늘도 고백하지 못했다. 그녀의 행복한 얼굴을 보니 이제는 영원히 말하지 못할 것 같았다. 눈발 사이로 지현의 뒷모습이 사라져갔다. 윤재는 문득 깨달았다. 여사친과 짝사랑 사이의 경계는, 결코 넘을 수 없는 투명한 벽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벽 너머의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