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의 공포: 그림자가 된 사랑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는 단 두 글자였다. "도망쳐." 평소 이모티콘 가득한 메시지만 보내던 여친답지 않은 문자에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은 그녀의 아파트 문을 열자마자 얼어붙었다. 거실 한가운데 쏟아진 핏자국. 벽에 긁힌 손톱 자국. 그리고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지은.
"지은아?" 내 목소리가 텅 빈 아파트에 메아리쳤다. 공기 중에 묵직하게 깔린 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밑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렸다. 그녀의 깨진 휴대폰이었다. 화면 보호기는 우리가 지난 봄 벚꽃 축제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때 그녀의 미소는 해처럼 밝았는데.
경찰이 도착하기까지 30분. 이웃들의 진술을 듣는 동안 나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항상 조용한 커플이었어요." "젊은 애들이라 가끔 말다툼하는 소리는 들렸지만..." "어제 밤에 여자 비명소리가 들린 것 같긴 한데, 요즘 드라마들이 워낙..."
지은이 실종된 지 일주일, 경찰은 내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동거 중이었나요?" "최근에 다툰 적 있었나요?" "그녀의 계좌에서 큰 금액이 인출된 흔적이 있는데, 혹시 아는 바가...?"
그날 밤부터 악몽이 시작됐다. 꿈에서 지은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세 시,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표시: '지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받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지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와 웃음소리뿐.
다음 날, 지은의 친구 민지가 찾아왔다. "오빠, 솔직히 말해봐요. 지은이한테 뭐 했어요?" 그녀의 눈에는 공포와 의심이 가득했다. "무슨 소리야?" "지은이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오빠가 못 받아들인다고 했잖아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지은과 헤어지다니? 우리는 다음 달에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생일 선물로 준비한 반지도 있었는데.
그날 밤, 또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엔 받지 않았다. 대신 메시지가 왔다. "너무해... 왜 날 버렸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야 했다.
지은의 아파트로 다시 갔다. 경찰 테이프가 붙은 문을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지은의 노트북을 찾았다. 비밀번호는 우리가 처음 만난 날짜. 열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일기장' 폴더였다.
마지막 일기는 실종 전날 쓰여져 있었다. "그가 내 뒤를 따라다닌다. 헤어지자고 했을 때부터. 창밖에서, 회사 앞에서, 심지어 거울 속에서도 그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현관문 앞에 장미꽃이 놓여 있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꽃. 경찰에 신고해도 증거가 없다고 한다. 이제 도망칠 수밖에..."
노트북을 덮으며 거울을 바라봤다. 그곳에 비친 내 얼굴은 너무도 낯설었다. 손에는 어느새 빨간 장미꽃 한 송이가 쥐어져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도망쳐야 하는 건 그녀가 아니라 내 안의 누군가로부터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