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대표님: 달콤한 도피
그 날 나는 대표님의 진짜 얼굴을 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회의실에서 완벽한 슈트를 입고 냉철한 판단을 내리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김 팀장,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대표님의 목소리는 평소의 단단함 대신 당혹감으로 가득했다. 베트남 호이안의 작은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같은 질문을 읽고 있었다.
대표님은 왼손에 들린 빈티지 카메라를 어색하게 숨기려 했다. 평소 회사에서 볼 수 없었던 청바지와 흰 티셔츠 차림이었다.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 넘기지 않고 자연스레 바람에 흩날렸다. 사무실의 그 위압적인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한 사람의 평범한 여행자로 서 있었다.
"저는 휴가 중입니다만..." 내가 말끝을 흐리자, 그는 잠시 침묵했다.
"사실 나도 휴가 중이야." 대표님의 말투가 바뀌었다. 존댓말이 아닌 반말. 타인의 실수를 가차 없이 지적하던 그 날카로운 눈빛 대신, 부드러운 미소가 그의 얼굴에 맺혔다.
우리는 묘한 공모 관계에 빠져들었다. 회사에서는 철저히 상하 관계였지만, 이국적인 호이안의 랜턴 불빛 아래서는 그저 두 명의 여행자일 뿐이었다. 대표님은 자신이 연차를 쓰지 않고 몰래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회사에는 중요한 해외 미팅이 있다고 거짓말했다고.
"가끔은 나도 탈출구가 필요해." 그의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매일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며 사는 건... 숨이 막혀."
석양이 물든 투본강을 따라 걸으며,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에서는 결코 할 수 없었던 대화들. 그의 어린 시절 꿈이 사진작가였다는 것, 하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경영자의 길을 걷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베트남의 달콤한 커피를 마시며 그는 내게 물었다. "당신은 왜 여행을 해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서일까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그거야. 여행은 우리에게 가면을 벗을 수 있는 기회를 줘."
일주일 후, 우리는 각자 회사로 돌아갔다. 그는 다시 완벽한 슈트를 입은 대표님이 되었고, 나는 그의 지시를 받는 팀장이 되었다. 하지만 가끔 회의실에서 그와 눈이 마주칠 때면, 우리는 작은 미소를 교환한다. 베트남의 그 작은 카페에서 만난 진짜 우리를 기억하며.
어제 내 책상에 놓인 서류 봉투에는 대표님의 사인이 담긴 휴가 승인서와 함께 작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진정한 자유를 찾는 당신의 여행에 행운이 함께하길." 그리고 그 밑에는 아주 작게 쓰여 있었다. "나도 함께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