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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여행

영상으로 찾아온 여행: 너의 기억 속으로

할머니의 제사상에 놓인 오래된 캠코더에서 재생 버튼이 저절로 눌렸다. 나는 그 순간을 목격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명백한 물리 법칙의 위반이었지만, 더 이상한 일은 벽에 비친 영상 속 풍경이 현재의 제사 공간이 아닌, 30년 전 할머니가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럴 수가..." 목소리가 떨렸다. 할머니는 생전에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가족들은 모두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영상 속에서 젊은 할머니는 스페인의 황금빛 들판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밀밭 위로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영상은 계속 이어졌다. 할머니가 순례자 쉘 심볼을 만지며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모습, 비에 젖은 돌계단을 오르는 장면, 현지인들과 와인을 나누는 순간들... 카메라 뒤에서는 남자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여기 봐요, 미영씨." 그 목소리는 할아버지의 것이 아니었다.

어둑한 방에서 나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영상 속 할머니의 눈빛에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열정과 자유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내가 알던 할머니가 아니었다. 할머니가 보여준 인생의 쪽지는 수십 장이 찢겨나간 앨범과도 같았다.

장면이 바뀌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 할머니는 카메라를 든, 이제는 분명히 보이는 남자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바람이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흩트렸고, 그 남자는 다정하게 그것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영상에는 소리가 없었지만, 나는 그들의 대화를 마치 들리는 것처럼 느꼈다.

"돌아가면 어떻게 할 거예요?" 남자가 물었을 것이다.

"살아야죠, 약속대로." 할머니가 대답했을 것이다.

영상이 갑자기 흔들렸다. 마지막 장면은 산티아고 해안가였다. 할머니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녀의 어깨는 무겁지만 단단해 보였다. 뒤에서 남자의 실루엣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화면이 흐려지다 완전히 정지했다.

캠코더의 배터리 표시등이 깜빡이며 꺼졌다. 제사상 위의 할머니 영정 속 그녀는 미소짓고 있었다. 나는 그 미소가 이전과 다르게 보였다. 애잔함 속에 담긴 비밀을 간직한 듯한 미소였다.

할머니의 서랍에서 발견한 고이 접힌 편지와 다음날 내 이름으로 배달된 산티아고행 왕복 티켓. 동봉된 쪽지에는 할머니의 필체로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여행은 영상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기억되는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