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영화남친

영화 같은 남친: 우리의 허구적 현실

스크린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던 그가 실제로 내 옆에 앉아있었다. 완벽한 측면 얼굴, 극적인 침묵, 그리고 때때로 비추는 도시의 네온사인이 그의 윤곽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냈다. 난 그런 미학적 순간에 빠져들었고, 동시에 이 모든 것이 내가 만들어낸 환상은 아닌지 의심했다.

"오늘 밤 별들이 참 선명하네," 현우가 말했다. 우리는 한강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밤하늘에서 별을 기대하는 것은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처럼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은 때로 거짓말을 용인한다.

현우를 만난 지 석 달. 그는 내가 본 모든 영화 속 남자주인공들의 집합체 같았다. 첫 데이트에서 우산을 씌워주는 정성, 기념일마다 준비하는 깜짝 이벤트, 다툼 후 비 오는 날 찾아와 하는 고백. 영화에서 봤던 장면들이 현실에서 재현되는 기분이었다. 너무 완벽해서 때로는 가슴이 아팠다.

"요즘 넌 어떤 영화를 찍고 있어?" 내가 물었다. 현우는 신인 영화감독이었다. 그의 얼굴이 잠시 굳었다가 평소의 미소로 돌아왔다.

"음, 로맨스야. 평범한 남녀가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그가 말끝을 흐렸다. 대답이 너무 모호했지만, 난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항상 그랬다.

내 휴대폰이 울렸다. 현우의 친구 민석이었다. "지금 어디야? 다 같이 모였는데 너만 오면 돼."

"나 지금 현우랑 한강에 있어," 내가 대답했다.

전화 너머로 긴 침묵이 흘렀다. "무슨 소리야... 현우는..."

그 순간 옆에 앉아있던 현우가 일어났다. "먼저 갈게." 그가 말했다.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민석이 한숨을 쉬었다. "다시 시작된 거야? 현우는 6개월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잖아. 그의 마지막 영화 시사회에 오기로 약속했잖아. 우리 모두가... 그를 보내줘야 할 때야."

전화를 끊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내 옆자리는 비어있었고, 함께 마신 커피잔도 하나뿐이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현우의 마지막 영화를 완성하고 있었다. 그와의 모든 순간은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미완성 영화였다. 내가 감독이었고, 또 유일한 관객이었다.

잠시 후 일어나 걸었다. 강변의 네온사인들이 물에 반사되어 춤을 추었다. 문득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어쩌면 내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