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짝사랑: 너를 향한 42.195km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그녀의 얼굴만 떠올랐다. 내 폐는 불타고 근육은 비명을 질렀지만, 42.195km를 달려온 이유는 오직 하나, 김유진이었다.
6개월 전, 체육관 데스크에서 첫 출근한 유진을 보았을 때부터 내 심장은 그녀의 리듬으로 뛰기 시작했다. 105kg의 거구였던 나는 유진의 눈에 그저 '운동이 필요한 회원' 중 하나였다. 그녀가 건넨 첫 마디는 "목표가 있으신가요?"였다.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의외로 단호했다. "마라톤 완주요."
그날부터 나의 변신은 시작되었다. 맥주 대신 프로틴 셰이크를, 침대 대신 러닝머신을 선택했다. 유진은 매일 아침 7시, 내 트레이닝을 담당했다. 그녀의 "한 번만 더!"라는 외침은 내 지친 근육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비에 젖은 운동화로 트레드밀을 돌릴 때도, 손바닥이 물집으로 뒤덮일 때도, 유진의 미소 하나가 모든 고통을 상쇄했다.
"10kg 감량하셨네요, 대단해요!" 유진의 칭찬에 마음은 천국에 다녀왔지만, 내게 그것은 여전히 '회원과 트레이너'의 경계를 넘지 않는 관계였다. 러닝벨트 위에서 흘린 땀방울이 내 짝사랑의 깊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매일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마라톤 대회 일주일 전, 용기를 내어 그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완주하면 꼭 같이 먹어요." 유진의 대답은 모호했지만, 나에겐 충분한 동기부여였다. 그날 이후 그녀는 출근하지 않았다. 동료 트레이너가 건넨 말은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유진 씨요? 어제 오랜 남자친구랑 제주도로 여행 갔어요."
마라톤 당일,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출발선에 선 내 마음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그런데 30km 지점, 숨이 턱에 차오를 때 문득 깨달았다. 이 여정은 처음부터 유진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내 심장은 사랑이 아닌 자존감으로 뛰고 있었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관중석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유진이 아니었다. 동네 러닝 크루에서 만난 지원이었다. 그녀는 내가 힘들 때마다 묵묵히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주었던 동료 러너였다. "축하해요, 완주자!" 비에 젖은 그녀의 미소가 유난히 빛났다.
몸무게는 30kg 줄었지만,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해졌다. 짝사랑은 마라톤처럼, 때로는 목적지보다 과정에서 더 큰 가치를 발견하게 한다. 그날 밤, 메달을 목에 걸고 지원과 나눈 완주 축하 맥주는 내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맛이었다. 유진을 향해 달려온 42.195km는 결국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