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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로맨스

재밌는 로맨스: 우리의 첫 페이지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나를 깨웠다. 잠결에 몸을 뒤척이다가 눈을 떴을 때, 내 침대 위에는 낯선 남자가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가장 이상한 점은 내가 전혀 놀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드디어 일어났네요, 여주인공 씨."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따뜻한 커피처럼 낮고 풍부했다. "페이지 273쪽에서 당신이 눈을 뜰 거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벽빛이 그의 윤곽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책장을 어루만지는 그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친구를 대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누구죠?" 내가 물었다.

"저는 당신 삶의 로맨스 소설에 갇힌 독자예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제가 읽는 이 책의 내용이 당신의 현실이 되고 있어요."

그는 자신이 읽던 책을 내게 건넸다. 표지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고, 책을 펼치자 오늘 아침의 대화까지 정확히 적혀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럼 우리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나요?" 내 질문에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게 바로 재밌는 점이에요. 제가 여기 오기 전, 마지막 장은 백지였거든요. 당신과 제가 함께 써나가야 할 페이지죠."

그날부터 우리는 매일 만났다. 그는 책을 읽고, 나는 그가 읽은 내용대로 하루를 보내는 이상한 동행이 시작됐다. 때로는 그가 웃으며 "오늘은 비가 올 거예요"라고 말하면 정말 비가 내렸고, "오늘 커피숍에서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날 거예요"라고 하면 정확히 그렇게 됐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우리는 책의 중간 부분에 도달했다. "여기서부터는 당신의 마음이 저를 향하기 시작해요," 그가 부끄러운 듯 말했다. 나는 이미 그 예언이 현실이 되었음을 느꼈다.

어느 날 밤, 그는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내일이면 책의 마지막 장에 도달해요. 그리고..."

"그리고?"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저는 돌아가야 해요. 다른 이야기의 독자로."

그날 밤, 나는 그가 잠든 사이 몰래 책을 훔쳐 마지막 장을 찢어버렸다. 아침이 밝았을 때, 그는 여전히 내 방에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는 정해진 결말이 없었다. 그저 빈 페이지처럼 무한한 가능성만이 있을 뿐.

지금도 우리는 매일 아침 함께 새로운 페이지를 쓴다. 가끔은 그가, 가끔은 내가 펜을 든다. 어쩌면 이게 진짜 재밌는 로맨스일지도 모른다. 결말을 모르는 채로 매일을 써나가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