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의 남사친: 보이지 않는 경계선
내가 그의 이름을 천 번째 불렀을 때, 그는 여전히 친구라는 단어로 나를 가두었다. "도연아, 너랑 상담할 일이 있어." 윤재의 목소리가 카페 테이블 너머로 건너왔다. 오늘따라 그의 목소리는 왜 이렇게 다르게 들리는지. 나는 사랑이라는 질병에 걸린 환자처럼 그의 모든 변화를 감지했다.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데..." 그의 말이 시작되자마자 내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에스프레소 쇼트의 쓴맛이 혀끝에서 번졌다. 쓰디쓴 현실이 입안에 머무는 느낌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며 나는 최선의 친구 얼굴을 했다. 3년의 짝사랑 동안 완벽하게 연습한 표정이었다.
"그 여자애가 누군데?" 내 목소리는 놀랍도록 안정적이었다. 수백 번의 상상 속에서 이미 이 순간을 대비해왔으니까. 윤재는 머그잔을 양손으로 감싸며 창밖을 바라봤다. 11월의 차가운 비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빗방울들이 내 마음처럼 흘러내렸다.
"사실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려워서..." 그가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을 열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 특징이야." 스크롤을 내리는 그의 손가락이 떨리는 것 같았다. 이제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양수업에서 처음 만나 '남사친'이라는 이름으로 지낸 3년의 시간이 저 메모장에 묻힐 것이다.
"첫째, 웃을 때 눈이 반달이 되는 사람." 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도서관에서 밤샘 공부할 때 내가 웃으면 그가 늘 하던 말이 생각났다. '반달 눈이네.' "둘째, 딸기 우유를 좋아하지만 딸기는 싫어하는 특이한 사람." 나는 무의식적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딸기 우유 팩을 바라봤다. "셋째, 슬플 때 혼자 영화관에 가는 사람."
그의 목소리가 계속됐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이 특징들이 모두 나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을 '그냥 친구'로 살아왔다.
"넷째, 항상 남사친이라고 불러서 내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 윤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제야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거기에는 내가 3년 동안 숨겨온 것과 같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난... 나는..."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다. 그가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비가 그치고 유리창 너머로 햇살이 비쳐들었다. 남사친과 짝사랑 사이, 우리가 그어놓았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그렇게 희미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