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의 사진: 빛과 그림자 사이
그녀의 사진을 찍는 건 열여덟 번째였다.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걸 그녀는 모른다. 셔터 소리가 들리지 않게 설정해둔 카메라로 멀리서 그녀의 웃는 얼굴, 책을 읽는 모습, 커피를 마시는 순간들을 담았다.
오늘도 카페 구석에 앉아 카메라를 작게 조절해본다. 그녀는 항상 오후 3시,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다. 차가운 렌즈 속으로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완벽하다. 햇빛이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을 비출 때면 금빛으로 변하는 마법 같은 순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셔터를 누른다.
"혹시 사진 찍으셨나요?"
심장이 멈췄다. 눈을 들어보니 그녀가 내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흘렀다. 대답을 못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저... 사진 전공이라서... 카페 풍경을 담고 있었어요."
변명이었다. 형편없는 변명.
"우연이네요. 저도 사진에 관심이 많아요. 볼 수 있을까요?"
그녀가 내 옆에 앉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라벤더와 바닐라의 미묘한 조화. 손가락이 떨리며 카메라의 사진들을 넘겼다. 다행히 그녀의 사진들은 다른 메모리 카드에 저장해두었다.
"구도가 독특하네요. 전 윤서라고 해요. 사진 동아리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관심 있으세요?"
윤서.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머릿속에서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폴더를 열자 그녀의 사진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창가에서 책 읽는 모습, 커피를 마시며 웃는 모습, 핸드폰을 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 모두 멀리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카페에서 우연히 그녀와 함께 찍은 셀카가 있었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얼굴, 진짜 웃음소리, 실제 목소리.
모니터를 응시하다 갑자기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동안 찍은 사진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허락 없이 찍은 수십 장의 사진들. 처음으로 내가 하던 행동이 짝사랑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우스 커서를 폴더 위에 올렸다. 삭제할까 말까 망설이다 '삭제' 버튼을 눌렀다.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라는 메시지가 뜨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예'를 클릭했다.
다음 날, 카메라에는 새 메모리 카드를 넣었다. 카페에 들어서자 윤서가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했다. 이번에는 그녀의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었다. 렌즈 너머로 보는 그녀의 모습은 전과 달랐다. 더 밝고, 더 진짜 같았다. 짝사랑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진짜 관계의 빛 속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그 어떤 몰래 찍은 사진보다 아름다운 장면이 내 앞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