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의 아내
그녀가 미소 짓는 순간, 나는 우리 결혼식에서도 보지 못했던 빛을 그녀의 눈에서 발견했다. 십오 년 결혼생활이 무색할 만큼 낯설고 아름다운 표정이었다. 문제는 그 미소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아내 미연은 아이폰을 귀에 대고 속삭이듯 대화를 나누었다. 요즘 들어 자주 보는 광경이었다. 부엌 싱크대에 기대어 전화를 받을 때면 그녀의 목소리는 젊은 날의 설렘을 가득 담고 있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웃음소리는 우리 집 벽에 스며들어 내게는 들리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당신, 누구랑 그렇게 재밌게 통화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물었다.
"회사 동료. 프로젝트 이야기 하느라." 그녀의 대답은 간결했고, 시선은 내게 닿지 않았다.
우리의 결혼은 전형적인 중매 결혼이었다. 사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 쪽에서는. 그녀의 차분한 성격과 깊은 눈동자에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같은 감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결혼은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뿐. 십오 년이 지나도 내 가슴 한켠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 그녀는 외출했다. "여자 친구들 만나고 올게"라는 메시지만 남긴 채. 나는 혼자 아파트 창문 너머로 불금을 즐기는 도시를 바라보며 맥주 한 캔을 따 마셨다. 그녀의 화장대 위에 놓인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빛바랜 표지, 오래된 비밀의 향기.
양심의 가책을 뒤로하고 일기장을 펼쳤다. 첫 페이지부터 내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사랑 고백이었다. 대학 시절, 같은 학과였던 우리. 그녀는 나를 짝사랑했다고 썼다. 소심해서 고백하지 못했고, 뒤늦게 중매로 만났을 때 운명이라 생각했다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일기는 계속되었다. 결혼 후 그녀는 나의 무심함에 점점 상처받았다. 내가 그녀의 사랑을 알아채지 못하는 동안, 그녀의 마음은 서서히 식어갔다. 마지막 페이지는 일주일 전에 쓰여졌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여야 한다. 그와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돌아왔다. 나는 서둘러 일기장을 제자리에 놓았다. 거실에서 그녀를 맞이하는 내 눈에는 타오르는 불길이 있었다. 이제야 보이는 그녀의 짝사랑과, 내가 놓친 십오 년의 무게가. 그리고 누군가에게 짝사랑하는 아내가 된 그녀의 모습이.
"오늘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아닌 단단함을 느꼈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는 진정 시작되려나, 혹은 끝나려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짝사랑을 알게 된 지금에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