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의 여친: 내가 사랑한 그녀는 남의 연인이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미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도서관 한켠에서 울려 퍼진 그 소리는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우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자 창가에 앉아 전화통화 중인 그녀가 보였다. 빛이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그녀는 항상 그곳에 있었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때론 책을 읽고, 때론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그녀. 하지만 늘 오후 4시가 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띄웠다. 그 미소가 향하는 대상이 나였으면 하고 바랐다.
"혹시 이 자리 비었나요?"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넨 그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고, 평소보다 더 밝게 빛나는 것 같은 미소로 대답했다. "네, 앉으세요."
민지라고 했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고,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다. 우리는 의외로 쉽게 대화를 이어갔다. 책과 영화, 음악에 대한 취향이 비슷했고, 말이 통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도서관 친구가 되었다. 매일 함께 공부하고, 가끔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오후 4시가 되면 그녀는 자리를 비웠다. 전화를 받기 위해, 혹은 도서관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그때마다 내 마음은 조금씩 무너졌다. 그녀에게 뭔가 특별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주말에 전시회 보러 갈래?" 몇 주가 지나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지만, 곧 미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미안해, 주말엔 남자친구와 약속이 있어."
그래, 남자친구.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듣고 나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날 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네가 좋아. 처음 봤을 때부터 줄곧.' 보내고 나서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다음 날, 도서관에 가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야 했다. 사과라도 해야 했다. 평소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데, 그녀가 들어왔다. 옆에는 낯선 남자가 있었다. 키가 크고 잘생긴, 분명 그녀의 남자친구일 그 사람. 그들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어제 문자 받았어." 그녀가 말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안해, 취해서 실수로..." 변명하려는데 그녀가 웃었다. "괜찮아. 사실... 고마웠어.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받는다는 게."
그녀의 남자친구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민지가 많이 얘기했어요. 같이 커피 한잔할래요?" 그의 따뜻한 미소에 어색하게 손을 맞잡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짝사랑은 끝났지만, 세 사람이 함께 나눈 그 오후의 대화는 내게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주는 것도 사랑의 한 형태임을,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끝은 아님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