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의 화장품: 네가 모르는 내 마음의 색
그녀의 립스틱 색이 바뀌면 그날 그녀의 기분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체리 레드. 누군가를 만나는 날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미연이 화장품 매장에서 일한 지 6개월. 그 시간 동안 나는 그녀의 모든 색을 기억했다. 코랄 핑크는 평범한 일상, 누드 베이지는 피곤한 날, 레드 와인은 자신감 넘치는 날... 그리고 체리 레드는 특별한 만남이 있는 날. 나는 매일 아침 그녀의 화장대 앞에서 어떤 색을 고를지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것만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김 대리님, 이번 신제품 테스터 샘플 좀 확인해주세요."
화장품 개발팀에서 일하는 나는 매주 한 번씩 그녀의 매장을 방문할 구실이 있었다. 신제품 테스트, 고객 피드백 수집... 회사에서 그런 이유로 방문하라고 하지 않았다면, 난 절대 그녀에게 말을 걸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와, 이번 틴트 색감 정말 예쁘네요. 제가 써봐도 될까요?"
미연은 언제나 그렇듯 새 제품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였다. 그녀가 손등에 테스터를 발라보는 동안, 나는 그녀의 집중하는 눈빛을 훔쳐봤다. 화장품을 바라볼 때 그녀의 눈에는 특별한 빛이 있었다.
"이 색상 정말 좋은데요? 무슨 이름이에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마케팅팀에서 고민 중이라..."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제가 이름 하나 제안해도 될까요? '첫눈에 반했어'는 어때요? 이 색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한 기분이 들어서요."
첫눈에 반했어.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내가 느꼈던 그 감정과 똑같았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면서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좋은 이름인 것 같아요. 마케팅팀에 전달해볼게요."
일주일 후, 기적적으로 그 이름이 채택되었다. 그녀에게 알리러 매장에 갔을 때, 미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날은 그녀가 체리 레드 립스틱을 바른 날이었다. 심장이 조금 아팠다.
"축하드려요, 미연씨. 그리고... 이거." 작은 상자를 건넸다. 그 안에는 '첫눈에 반했어' 틴트가 들어있었다. 정식 출시 전 첫 번째 완성품이었다.
"와, 정말요? 너무 감사해요!"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에 덩달아 행복했다.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제가 감사 인사로 식사라도..."
그 순간, 매장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미연의 얼굴이 환해졌다. 체리 레드의 주인공이었다.
"여보, 벌써 왔어?"
여보. 한 단어로 내 세상이 무너졌다.
다음 날, 사직서를 냈다. 새 회사에서 첫 출시한 립스틱은 '짝사랑'이라는 이름이었다. 그 색은 체리 레드보다 조금 더 진했다. 아무도 모를 비밀을 담은 화장품이, 누군가의 얼굴에 내 마음의 색을 물들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