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속 짝사랑: 27층의 비밀
그녀가 커피를 마시는 방식은 언제나 같았다. 오른손 약지에 낀 은반지가 머그잔에 '딩' 소리를 내며 부딪히고, 그 소리가 27층 사무실 구석 내 자리까지 미세하게 울려 퍼졌다. 3년째 지속된 나의 짝사랑은 그 소리로 하루를 시작했다.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8초가 내 하루의 전부였다. 그녀의 향수 냄새는 바닐라와 재스민이 묘하게 섞인 향이었고, 나는 그 향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 아침 정확히 8시 27분에 1층 로비에 서 있곤 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의 차가운 감촉, 문이 열릴 때의 기계음, 그리고 그녀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리듬을 이루었다.
"이번 프로젝트 자료 준비됐나요?" 오늘 아침, 처음으로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맞은편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마치 열병을 앓는 환자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네,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최선을 다했지만, 내 대답은 마치 고장 난 복사기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어색했다.
점심시간, 구내식당의 소음 속에서 동료 진우가 귓속말로 전했다. "김 팀장님, 알아? 오늘부로 다른 회사로 이직하신대." 내 손에서 플라스틱 젓가락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 소리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 것 같았다.
퇴근 시간, 용기를 내어 그녀의 자리로 향했다. 이미 텅 빈 책상 위에는 작은 쪽지가 놓여 있었다. "김현우 대리님께, 항상 프로젝트 자료를 완벽하게 준비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사실 당신이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저도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답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쪽지 아래에는 작은 카페의 주소와 '내일 저녁 7시'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은반지가 놓여 있었다.
창밖으로 서울의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27층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마치 수만 개의 별처럼 빛났다. 3년간의 짝사랑이 끝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때로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