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로맨스: 매일 아침 다섯 번째 신호등에서
그녀는 매일 아침 다섯 번째 신호등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근길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내 일상에 박힌 못처럼, 그 교차로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건 3월의 비 내리는 아침이었다. 우산 아래 파란 스카프를 두른 그녀가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미소지었다. 그게 전부였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그녀를 보았다. 출근 시간을 5분 당겼다. 그녀와 함께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빨간 불이 켜진 60초가 내 하루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되어갔다. 어느 날은 그녀가 들고 있던 책 제목을 기억해뒀다가 서점에서 구입했다. 다음 날 그 책을 들고 가면서 무언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오늘 비가 올 거래요."
42일 만에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목소리는 상상했던 것보다 낮고 부드러웠다. 매일 아침 다섯 번째 신호등에서의 짧은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름은 서연, 동네 출판사에서 일한다는 것, 아메리카노보다 녹차라떼를 좋아한다는 것까지. 한 달 동안 60초씩 모아 알게 된 정보들. 퍼즐 조각처럼 그녀의 모습을 완성해갔다.
계절이 바뀌고, 여름이 왔다. 출근길이 즐거워졌다. 매일 아침 머리를 감고, 옷을 고르는 시간이 늘었다. 회사에서도 아침에 먼저 출근한다며 상사에게 칭찬을 들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의 출근 습관을 바꾼 건 그녀였다.
"내일은 오지 못할 것 같아요. 지방 출장이에요."
그날 아침, 그녀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음 날 아침, 다섯 번째 신호등은 평소보다 더 적막했다. 그녀 없는 교차로는 그저 차가운 아스팔트와 무심한 신호등뿐이었다. 바보처럼 연락처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흘이 지났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리고 보았다. 파란 스카프 대신 노란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두 잔의 테이크아웃 컵.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내게 녹차라떼 한 잔을 건넸다.
"출근 전에 같이 마실래요? 지각해도 괜찮다면요."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의도적으로 지각을 했다. 회사 전화를 무시하며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출근길에 시작된 우리의 로맨스는 그렇게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이제 나는 매일 아침, 그녀의 회사 앞에서 녹차라떼 두 잔을 들고 그녀를 기다린다. 다섯 번째 신호등은 이제 우리의 첫 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