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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남친

취업과 남친 사이: 선택의 무게

내 인생의 두 축이 동시에 무너진 건 정확히 23분 전이었다. 취업 준비로 폐인이 된 내게 남친은 5년 만에 이별을 고했고, 간신히 최종 면접까지 올라간 대기업에선 불합격 메일이 도착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번갈아 보며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울음과 웃음 사이, 그 모호한 경계에서.

"민지야, 너 미쳤니? 왜 웃어?" 룸메이트 수아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커피 향이 났다. 아메리카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던 날마다 준호가 사다주던 것과 같은 향이었다.

"드디어 자유야." 내 목소리는 놀랍도록 담담했다. "취업도, 남친도 없으니까. 완벽한 무중력 상태."

창밖엔 서울의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준호와 첫 키스했던 날도 이런 비가 내렸다. 그때 그는 내게 약속했다. "졸업하면 같이 취직해서 한강 뷰 아파트에 살자." 그 말을 믿고 나는 취업 준비에 목숨을 걸었다. 어학 점수, 자격증, 인턴십... 그 모든 스펙의 노예가 되었다.

그 사이 준호는 변했다. 먼저 취직한 그는 점점 바빠졌고, 우리의 대화는 메시지로, 그리고 이모티콘으로 축소되었다. 날 위해 기다려 준다던 약속은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아"라는 문자 한 줄로 무너졌다.

수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민지야, 혹시 준호가 너보다 서윤이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닐까? 걔 벌써 대기업 정규직인데..."

그 순간 깨달았다. 준호에게 나는 '취업 준비생'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이었다. 그에게 사랑은 스펙이었고, 나는 불합격자였다. 하지만 내게 취업은 단지 준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웃음이 멎었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아, 내가 뭐하고 있었던 거지?"

그날 밤 나는 이력서를 모두 삭제했다. 대신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여행 블로그를 시작했다. 첫 게시물의 제목은 '취업과 남친을 잃고 찾은 것들'이었다. 의외로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댓글에서 만난 한 독자와 나눈 대화는 블로그를 넘어 카페 미팅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나는 여행 콘텐츠 스타트업의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새 남자친구는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괜찮다. 가끔 준호의 SNS에서 서윤과 찍은 사진을 본다. 그들은 한강 뷰 아파트 테라스에서 샴페인을 마시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가슴이 찢어졌을 장면인데, 지금은 그저 빠르게 스크롤을 넘긴다.

취업도, 남친도 인생의 모든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잃어야만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내 경우엔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