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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대표님

패션과 대표님: 가면 뒤의 진실

대표님의 옷장을 열었을 때, 내가 본 것은 검은색뿐이었다. 그것도 서른 벌의 똑같은 블랙 터틀넥과 검은색 슬랙스, 그리고 한 줄로 정렬된 일곱 켤레의 동일한 검은색 로퍼였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듯, 우리의 대표님도 의사결정 피로를 줄이기 위해 '유니폼'을 선택했다고 모두들 믿었다. 하지만 내가 그의 진짜 비밀을 알게 된 건, 회사 창립 5주년 파티에서였다.

"김 팀장, 내 옷장에서 다른 재킷 좀 가져와." 대표님이 와인을 쏟은 재킷을 벗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처음으로 그의 개인 공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평소 차갑고 단호한 결정으로 회사를 이끌어온 그의 사생활을 엿볼 기회였다.

옷장을 열자 숨이 막혔다. 한쪽에는 익숙한 검은색 옷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숨겨진 미닫이 문을 열자 그 뒤에는 화려한 색상의 디자이너 의상들이 폭발하듯 펼쳐졌다. 네온 핑크 수트, 자수 놓인 실크 재킷, 빈티지 프린트 셔츠... 각각에는 착용 날짜와 장소가 적힌 태그까지 달려 있었다. 뮤지엄급 패션 컬렉션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모든 태그에는 낯선 주소들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벽에 걸린 사진 한 장. 대표님이 형형색색의 의상을 입고 익명의 클럽에서 DJ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주말마다 실종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찾았어?" 대표님의 목소리가 방 바깥에서 들려왔다. 나는 황급히 검은색 재킷을 하나 집어들고 미닫이 문을 닫았다.

"감히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재킷을 건네자 그가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위협보다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이 회사에서는 나를 강철 같은 리더로만 봐야 해. 내 진짜 모습을 알면... 아무도 날 존중하지 않을 테니까."

그날 밤, 나는 우연히 SNS에서 도시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명성을 떨치는 미스터리 DJ 'NOIR'의 소식을 접했다. 화려한 의상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동시에 정체를 절대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었다. 댓글에는 그의 음악만큼이나 독특한 패션 감각에 열광하는 팬들의 찬사가 넘쳐났다.

다음 날 사무실에서, 검은색 터틀넥을 입은 대표님이 회의를 이끄는 모습을 새롭게 바라보았다. 그의 단조로운 블랙 앙상블 아래에는 화려한 색채의 영혼이 숨쉬고 있었다. 때로는 우리가 가장 밝은 색을 감추기 위해 검은색을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사내 이메일이 도착했다. 주말 회식 장소가 변경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는 "드레스 코드: 당신이 진짜로 되고 싶은 모습"이라고 적혀 있었다. 발신자는 대표님이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내 옷장에서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빨간색 재킷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