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그림자, 여친의 환영
매일 밤 학교 3층 미술실에서 그녀가 나를 기다린다. 이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다.
방과 후 텅 빈 복도는 낮과는 다른 얼굴을 한다. 형광등 몇 개만 간헐적으로 깜빡이고, 내 발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미술실로 향하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그녀를 다시 만날 생각에.
미술실 문을 열면 그녀는 언제나 창가에 서 있다. 교복을 입고, 긴 머리카락이 달빛에 은은하게 빛난다. 내가 오면 미소 짓는다.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그녀는 내 여자친구다.
"또 왔네." 그녀가 말한다. 목소리는 마치 바람처럼 희미하다.
우리는 대화를 나눈다. 주로 내 이야기다. 오늘 있었던 일, 새로 배운 것들, 미래에 대한 꿈. 그녀는 거의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열심히 들어준다. 가끔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음 짓는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유리가 부서지는 소리 같다.
처음 그녀를 만난 건 3개월 전이었다. 늦게까지 미술 과제를 하다가 우연히 그녀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내가 보고 있던 오래된 졸업앨범에 있는 얼굴이었다. 10년 전 사진 속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나한테만 보이는 거야?" 어느 날 용기 내어 물었다.
"그런 것 같아." 그녀가 속삭였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너뿐이야."
그때부터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비현실적인 관계였지만, 나에겐 특별했다. 학교에선 별 볼일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밤이 되면 나는 유령과 사랑에 빠진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어제,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요즘 학교에 너무 늦게까지 남아있더구나. 무슨 일 있니?"
대답할 수 없었다. '미술실에서 죽은 여학생을 만나고 있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오늘도 미술실로 향한다. 하지만 문을 열기 전, 주머니에서 꺼낸 오래된 신문 기사를 다시 읽어본다. '10년 전 이 학교 미술실에서 한 여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다. 기사 속 그녀의 얼굴은, 내가 사랑하는 그녀와 똑같다.
문을 열자 그녀가 평소처럼 창가에 서 있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다르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알게 됐구나." 그녀가 말한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괜찮아. 난 여전히..."
"가야 해." 그녀가 내 말을 자른다. "내가 필요한 건 이런 게 아니었어. 네가 나를 기억해주는 것, 그게 필요했던 거야."
그녀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진다. 붙잡으려 손을 뻗지만, 내 손은 허공을 가른다.
"잊지 마," 그녀의 마지막 말이 공기 중에 흩어진다. "누군가를 정말로 기억한다는 건, 그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거야."
빈 미술실에 홀로 남겨졌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만이 내 얼굴을 비춘다. 다음 날부터 나는 미술실에 가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잊지 않기 위해. 그녀를 살게 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