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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호텔

환각의 스위트룸: 학교와 호텔 사이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식기도 전에 호텔 로비는 학교 복도로 변했다. 벨벳 소파와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있던 자리에 이제는 녹슨 사물함과 깜빡이는 형광등만이 남았다. 나는 리셉션 데스크에서 손님들에게 미소 지으며 키를 건네던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분필 가루 묻은 손으로 출석부를 넘기고 있다.

"김 선생님, 3학년 2반 수업 시작하셔야죠." 교감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어제까지 나를 '지배인님'이라 부르던 호텔 매니저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 눈을 꼭 감았다 떴다. 교실로 향하는 복도는 호텔의 그것과 똑같은 붉은 카펫이 깔려있었고, 학생들의 웃음소리는 마치 로비에서 들리던 샴페인 잔이 부딪히는 소리처럼 맑고 청명했다. 벽에 걸린 교훈이 적힌 액자는 5성급 호텔의 품격을 자랑하던 그림들과 같은 골드 프레임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30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교복은 어딘가 호텔 유니폼을 닮아 있었다. 창문 너머로 운동장이 보이는 듯했지만, 자세히 보니 그것은 호텔의 수영장이었다.

"선생님, 오늘은 무엇을 가르쳐주실 건가요?" 맨 앞자리 학생이 물었다. 그녀의 눈빛은 어제 스위트룸에서 만났던 외국 귀빈의 그것과 동일했다.

"오늘은..." 내 목소리가 떨렸다. "서비스 정신에 대해 배울 거예요."

칠판에 글씨를 쓰려는데 초크가 아닌 호텔 볼펜이 손에 쥐어졌다. 책상 위에는 교과서 대신 호텔 서비스 매뉴얼이 놓여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점심시간, 급식실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으로 변해있었다. 학생들은 나이프와 포크를 우아하게 다루었고, 배식구에서는 셰프가 직접 플레이팅을 했다. 배급받은 식판에는 학교 급식이 아닌 호텔 뷔페의 진미가 담겨 있었다.

"김 선생님, 오늘 저녁 교직원 회의에서 발표하실 준비는 되셨나요?" 교장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호텔 오너의 그것과 일치했다.

하교 종이 울렸다. 학생들은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섰지만, 복도를 지나 그들이 향한 곳은 학교 정문이 아닌 호텔 엘리베이터였다. 숫자가 오르내리는 디스플레이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를.

30년 전, 이 건물은 최고급 호텔이었다. 그리고 화재 이후, 재건축되어 학교가 되었다. 나는 그 화재로 목숨을 잃은 호텔 지배인이었다. 마지막 손님을 구하려다 5층에 갇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교무실로 돌아와 내 책상을 바라보니, 오래된 호텔 키 한 개가 놓여 있었다. 번호는 501. 어제까지만 해도 그곳은 내 스위트룸이었다. 오늘부터는 내 교실이 될 것이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