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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맨스

호텔 로맨스: 1203호의 약속

그녀가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층수 버튼을 누를 때, 내 심장도 함께 눌려졌다. 12층, 1203호. 그곳에서 우리의 22년 전 약속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그 호텔이 있을까요?" 수미의 목소리는 떨렸다. 우리는 스물셋, 어린 나이에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유학과 내 군 입대로 헤어져야 했다. "22년 후, 같은 호텔 같은 방에서 만나자"는 청춘의 무모한 약속을 했던 그날이 오늘이었다.

호텔 로비는 달라져 있었다. 푸른빛 대리석이 황금빛 인테리어로 바뀌었고, 한때 우리가 앉아 속삭이던 소파는 사라졌다. 리셉션에서 예약을 확인하는 동안, 수미의 향수 냄새가 22년 전 그대로였다. 장미와 바닐라향, 그리고 그녀만의 미묘한 체취가 섞인.

"1203호 예약 확인됐습니다." 직원의 말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생긴 주름이 웃음을 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침묵했다. 반지가 없는 그녀의 왼손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룸 키를 꽂자 문이 열렸다. 1203호는 놀랍게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시 전경, 침대 위치, 심지어 벽지의 패턴까지.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 호텔, 리모델링을 안 했나 봐요." 수미가 창가로 걸어가며 말했다.

"적어도 이 방은요." 내가 대답했다.

그녀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22년 전 우리가 함께 썼던 일기장이었다.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앉아 옛 추억을 읽기 시작했다. 서툰 글씨로 적힌 사랑의 맹세들, 미래에 대한 꿈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1203호 약속'.

"사실... 이 방을 22년 동안 매년 이날 예약했어요." 그녀의 고백에 나는 숨이 멎었다. "당신이 올지 몰라서... 처음 몇 년은 정말 기다렸고, 나중에는 그냥 의식처럼 되었죠."

"나는..." 내 목소리가 떨렸다. "3년 전부터 용기를 내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항상 '예약 마감'이라는 답변을 들었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내 손이 그녀의 손을 찾아갔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반짝였고, 우리의 늦은 로맨스가 시작되는 순간, 호텔 방 전화기가 울렸다.

"1203호 손님, 체크아웃 시간을 알려드립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에 우리는 혼란스러워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체크인한 지 겨우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만, 방금 체크인했는데요?" 내가 말했다.

"손님, 저희 시스템상 어제 체크인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1995년 5월 17일에 체크인하셨고요."

전화를 내려놓자, 수미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창밖을 내다보니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고층 빌딩들이 사라지고, 90년대의 도시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호텔 방은 우리의 시간을 기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평생의 시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