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로맨스: 42층의 비밀
42층 회의실의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반짝이던 날, 나는 그녀와 단둘이 남았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서류를 흩트릴 때마다 그녀의 향수 냄새가 미세하게 퍼졌다. 부사장인 그녀와 평범한 과장인 나 사이에는 두 개의 직급과 칸막이 세 개의 거리가 있었다. 회사 내 로맨스는 취업규칙 57조에 의해 '강력히 자제'되는 행위였다.
"김 과장, 그 보고서에 놓친 부분이 있어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다가왔다. 검은색 정장 치마가 무릎 위로 살짝 올라가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회의실에 울렸다. 모니터를 가리키는 그녀의 손가락에서 반지가 사라진 지 정확히 3주째였다.
"저기... 부사장님." 내 목소리가 무의식적으로 낮아졌다. "왜 항상 늦게까지 남아계세요? 다른 임원들은 다 퇴근했는데..."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가 내 전부라고 생각했어요. 이혼하고 나서 더 그래요." 그녀의 눈에 잠시 슬픔이 스쳐갔다. "당신은요? 매일 야근하면서 얻는 게 뭐예요?"
말문이 막혔다. 10년간 이 회사에 바친 내 인생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승진? 연봉? 아니면 오늘처럼 우연히 마주치는 그녀와의 순간들?
"솔직히 말하자면," 용기를 내어 말했다. "부사장님을 볼 수 있어서요."
침묵이 내려앉았다. 심장이 귓가에서 요란하게 뛰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내 연애에 대한 규정을 알고 있나요, 김 과장?"
"네." 고개를 숙였다. "강력히 자제하라고요."
그녀가 내 보고서를 덮으며 말했다. "재미있는 건, 그 규정을 제가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스며들었다. "그래서 언제든 수정할 수 있죠."
다음 날 아침, 전 직원 메일함에는 개정된 취업규칙이 도착했다. 57조는 '회사 내 건전한 인간관계 형성을 장려한다'로 바뀌어 있었다. 내 책상 위에는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오늘 저녁 7시, 1층 로비에서. -부사장"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누군가 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지만, 그녀는 의외로 태연했다. 어쩌면 회사라는 공간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42층의 불빛이 꺼지고, 우리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