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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짝사랑

회사에서의 짝사랑: 투명 유리문 너머

그는 나를 볼 수 없는 투명 유리 너머에 있었다. 매일 아침 9시 정각, 우리 회사 마케팅팀 김준호 과장은 정확히 같은 위치에서 커피를 마신다. 나는 그의 일상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내 존재조차 모른다. 이게 바로 짝사랑의 가장 쓸쓸한 점이다.

"이수진 대리, 이번 프로젝트 자료 정리 좀 부탁해요." 팀장의 목소리가 내 생각을 끊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프레드시트 행과 열 사이로 김준호의 얼굴이 자꾸 겹쳐 보였다. 오늘도 나는 그를 몰래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을 때의 떨림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가 무심코 건넨 "소금 좀 건네주시겠어요?"라는 말에 내 심장은 마라톤을 완주한 것처럼 뛰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을바람처럼 부드럽고 진득했다. 소금통을 건네며 살짝 스친 손끝의 감각이 일주일 내내 내 손에 남아있었다.

회사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나는 미소를 지어보지만, 그의 시선은 언제나 내 어깨 너머 어딘가를 향해 있다. 가끔은 내가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투명함이 나를 더 용감하게 만든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좀 더 솔직하게 그를 바라볼 수 있으니까.

오늘 저녁, 회사 회식 자리. 소주 두 잔이 나를 대담하게 만들었다. "김과장님, 사실 제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우리 공주님'이라는 이름과 함께 웃고 있는 어린 소녀의 사진. 그는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응, 아빠 곧 갈게. 우리 딸 잘 있었어?"

세상이 갑자기 정지했다. 그가 이혼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애정은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사랑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사랑한 것은 진짜 김준호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는 것을.

다음 날 아침, 평소와 같이 9시 정각, 그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은 더 이상 그를 좇지 않았다. 대신 내 컴퓨터 화면에 집중했다. 업무 이메일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새로운 프로젝트 책임자로 내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내 커리어에 대해, 내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짝사랑은 끝났지만, 어쩌면 이게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투명 유리문 너머의 그가 아닌, 바로 이곳, 내 자리에서 빛나는 나를 발견하는 여정. 가끔 그를 마주치면 여전히 심장이 뛰지만, 이제는 그 떨림을 견딜 수 있다. 어쩌면 짝사랑의 진짜 의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