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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대표님

MBTI 대표님: 숫자로 보는 영혼

대표님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질 때, 그의 수첩에 적힌 네 글자를 훔쳐보았다 - 'ENTJ'. 창밖에서는 도시의 불빛이 형광등 아래 긴장된 얼굴들을 비추고 있었다.

"자네는 ISFP군." 갑자기 나를 향해 말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등골을 타고 내려갔다. 어떻게 알았을까. "직감이야. 나는 사람의 MBTI를 한 번만 보면 알아." 그가 미소지었다. 그 미소에는 자신감과 통제력이 섞여 있었다.

우리 회사는 3개월 전부터 '타입 경영'을 도입했다. 모든 직원이 MBTI 테스트를 받고, 대표님은 그 결과에 따라 업무를 배정했다. 팀 구성도 MBTI 궁합으로 정해졌다. 회의실 벽에는 16가지 유형이 색깔별로 분류된 차트가 걸려 있었고, 사내 메신저에는 이름 옆에 MBTI 태그가 붙었다.

"ISFP는 창의적이지만 마감에 약해.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ESTJ인 김 과장과 함께 일하게." 대표님이 말했다. 난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의 날카로운 눈빛 앞에서 입술만 깨물었다. 그의 손가락은 타이핑하듯 테이블을 두드렸다 - 마치 내 미래를 코딩하는 것처럼.

퇴근 후, 회사 근처 술집에 모인 동료들은 모두 같은 얘기를 했다. "대표님은 우리를 사람이 아니라 알고리즘으로 봐." "내가 INFJ라서 승진에서 밀린 거래." "난 ENTP라 아이디어만 내고 실행은 ISTJ에게 넘긴대."

그날 밤, 대표님의 개인 사무실에 몰래 들어갔다. 호기심이 죄책감을 이겼다. 그의 컴퓨터 비밀번호는 예상대로 'ENTJ1234'였다. 화면에는 우리 모두의 얼굴이 MBTI 유형별로 정리된 표가 있었다. 각 사람마다 업무 효율성, 팀워크 점수, 승진 가능성까지 수치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서 하단에 작은 글씨로 적힌 문구를 발견했다. "본인 MBTI: ????? (미정)" 그 옆에는 수십 개의 자가 테스트 결과가 있었는데, 모두 다른 유형이 나온 것이었다.

다음 날, 대표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자네, 어제 내 사무실에 들어갔지?"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괜찮아. 나도 알고 싶었으니까. 내가 누구인지."

"대표님은..." 말을 고르려 했지만, 그가 먼저 손을 들었다.

"모두가 네 글자로 정의될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단순하겠어. 하지만 난 답을 찾지 못했어. 매번 다른 결과가 나와." 그의 눈에서 피로가 보였다. "회사를 MBTI로 운영한 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복잡성을 단순화하려는 시도였을 뿐이야."

창문 너머로 오후의 햇살이 들어왔다. 대표님의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드리워졌다. "오늘부터 MBTI 경영은 폐지해. 대신..."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자네가 새로운 인사 시스템을 구축해보지 않겠나? 사람을 숫자가 아닌 영혼으로 보는 방법을."

그날 저녁, 사무실을 나서며 내 이름표에서 'ISFP' 태그를 떼어냈다. 네 글자보다 더 복잡하고, 더 아름다운 무언가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