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간식아내

간식의 맛, 아내의 부재

신혼 때부터 내가 퇴근하면 아내는 항상 식탁 위에 간식을 준비해 두었다. 17년째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의식이었다. 그런데 오늘, 식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엔 아내가 간식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나 생각했다. 부엌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마른 바닥이 삐걱거렸다. 평소라면 아내의 웃음소리가 이 적막을 채웠을 텐데. 냉장고를 열어보니 익숙한 보랏빛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아내가 좋아한다며 내게 건넸던 포도맛 제리. 이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되었다.

상자를 꺼내 식탁에 앉았다. 딱딱해진 젤리를 입에 넣으며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거실에서 벨소리가 들렸다. 이상했다. 아내는 핸드폰을 두고 나가는 법이 없었다.

거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소파 옆 작은 탁자 위에 아내의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 옆에는 편지 한 장. '미안해요'라는 두 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편지를 펼치자 포도 젤리 얼룩이 살짝 묻어 있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했어요. 마지막으로."

그녀가 떠났다. 우리의 17년을 정리한 편지는 겨우 다섯 줄이었다.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당신은 내 간식보다 회사를 더 사랑했어요."

나는 식탁으로 돌아가 포도 젤리를 하나 더 집어 들었다. 입 안에서 달콤함이 퍼졌지만, 이전과는 다른 맛이었다. 평소엔 눈치채지 못했던 신맛이 혀끝을 자극했다. 냉장고로 다가가 보니 아내가 매일 사다 놓던 다른 간식들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말린 망고, 요구르트, 크래커... 심지어 내가 싫어한다고 했던 곶감까지.

그제야 깨달았다. 아내는 내가 간식을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 내가 좋아했던 건 그녀가 간식을 준비하는 마음이었다. 내 취향을 기억하고, 퇴근 시간에 맞춰 식탁에 놓는 그 소소한 의식이. 내가 사랑했던 건 포도 젤리가 아니라, 젤리를 건네는 아내의 미소였다.

포도 젤리 상자를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 열쇠를 집어 들며 생각했다. 17년 동안 매일 간식을 준비했던 아내에게, 오늘은 내가 그녀가 좋아하는 간식을 들고 찾아갈 차례였다. 식탁 위에 놓인 간식이 아닌, 식탁 앞에 앉은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