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같은 썸타기, 또는 썸타기라는 게임
알림이 울렸다. 모니터 오른쪽 하단에 '하트 충전 완료'라는 메시지가 떴다. 나는 지친 눈을 비비며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3시 27분. 김수아가 접속했다는 알림도 함께 떠 있었다. 우리의 '썸타기 게임'은 오늘로 정확히 99일째였다.
"이번엔 내가 이긴다." 나는 중얼거리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수아와 나는 같은 회사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였다. 실제로는 몇 번 마주친 적 없는 사이였지만, 이 게임 속에서는 거의 연인이나 다름없었다. '썸타기 시뮬레이션'이라는 이 게임은 현실의 인물과 연결해 가상의 관계를 쌓아가는 신개념 데이팅 시뮬레이터였다. 현실에서는 말 한 번 제대로 못 건네는 상대와도 게임 속에서는 달콤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화면 속 수아의 아바타는 항상 그랬듯 웃고 있었다. 오늘의 선택지는 '퇴근 후 우연한 만남'이었다. 나는 세 가지 선택지 중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한다'를 골랐다. 승률이 38%로 표시됐지만, 내 캐릭터의 매력 수치와 지금까지 쌓아온 친밀도를 생각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게임 속 수아는 수줍게 웃으며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가상의 저녁 식사 장면이 펼쳐졌고, 우리는 서로의 취향과 일상에 대해 대화했다. 화면 속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갔지만, 실제로는 프로그래밍된 응답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슴이 뛰었다. 식사가 끝나고 귀가하는 길, 게임은 마지막 선택지를 제시했다. '손을 잡는다' 혹은 '오늘 즐거웠다고 말한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첫 번째를 선택했다.
화면이 멈추었다. 게임 로딩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채팅창이 열렸다.
"매일 밤 같은 시간에 접속하네요. 야근인가요, 우진 씨?"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이건 프로그래밍된 대화가 아니었다. 실제 수아였다. 게임 시스템이 상대방이 동시에 접속했을 때 실시간 채팅을 지원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네... 당신도요?"
"사실... 99일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우진 씨가 저와 연결된 걸."
얼굴이 화끈거렸다. 99일 동안 우리가 나눈 모든 가상의 대화, 내가 선택한 모든 옵션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일 점심시간에 8층 카페에서 만나요. 진짜 저녁은 그 다음에 해도 될 것 같고요."
메시지를 읽자마자 게임 화면에 '미션 성공'이라는 문구가 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알림이 내 머릿속에서 번쩍였다. 내일, 실제로 그녀를 만나게 된다. 게임은 끝났지만, 현실은 이제 시작이었다. 화면을 끄며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이란 결국, 우리가 선택한 옵션들의 연속일 뿐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