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드라마의 고백
커트가 올라가기 3분 전, 내 가슴은 폐가 터질 듯이 뛰었다. 20년 동안 드라마 감독으로 살아왔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될 차례였다. 마지막 에피소드 촬영장, 조명이 만드는 그림자 사이로 은주의 실루엣이 보였다.
"감독님, 마지막 장면 리허설 준비됐습니다." 조연출의 목소리가 내 생각을 끊었다. 모니터 뒤에서 은주를 바라보는 동안, 그녀는 대본을 읽고 있었다. 그 얼굴을 3년 동안 카메라에 담았지만, 내 마음속 감정은 한 번도 필름에 담지 못했다.
주변은 온통 드라마 같은 이야기였다. 인기 배우와 베테랑 감독의 로맨스는 시청률을 올리는 가십거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게는, 이것이 전부였다. 매일 밤 편집실에서 그녀의 장면만 반복해서 보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
"이번 작품이 끝나면 한동안 쉬려고 해요." 커피를 건네며 은주가 말했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피로의 그림자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오랜 촬영의 고단함이 그녀의 목소리에 스며들어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대답하며 목이 메었다. 이 드라마가 끝나면 은주를 다시 만날 핑계가 사라진다. 연출자 입장에서 배우에게 고백하는 것은 업계의 암묵적 금기였다. 내 감정의 대본은 계속 수정되기만 했다.
스태프들이 마지막 장면을 준비하는 동안, 바람이 촬영장의 커튼을 살짝 흔들었다. 세트장의 인공적인 향기와 은주의 장미향 perfume이 섞여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모니터에 비친 그녀의 표정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복잡했다.
"자, 시작합니다! 3, 2, 1, 액션!" 내 목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은주는 완벽하게 연기했다. 슬픔과 희망, 포기와 결단이 그녀의 눈빛 하나에 모두 담겨 있었다. 대본에 없는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컷! 완벽해." 목소리가 떨렸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스태프들이 박수를 치는 동안, 은주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접힌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감독님만 읽어주세요." 그녀가 속삭였다. 내 손에 쥐어주고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조용한 편집실에서 그 종이를 펼쳤다. 첫 줄만 읽고도 내 심장은 폭주했다. "3년 전, 첫 오디션 날부터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드라마 대본이 아니었다. 은주의 진짜 고백이었다.
그날 밤, 촬영장을 정리하며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 이젠 카메라도, 대본도, 연출도 없었다. 우리의 진짜 이야기는 모든 드라마가 끝난 자리에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