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남사친: 달콤함 뒤의 쓴맛
그가 포장지를 뜯는 소리는 언제나 내 귀에만 들리는 신호였다. 창가 자리에 앉은 우진이 또다시 과자를 꺼내는 순간,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열두 살 때부터 이어온 우리만의 의식. 열여덟이 된 지금도 변함없다.
"또 허니버터칩이야? 네 입맛은 정말 변화가 없네." 내가 말하자 우진은 씩 웃으며 과자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노을빛에 반사된 금색 포장지가 반짝였다. 그의 손가락은 소금 가루로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너만한 친구가 어딨어. 다른 애들은 다 과자 달라고 달려드는데." 우진의 말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열다섯 해 동안, 우리는 '그냥 친구'였다. 남자사람친구. 남사친. 다른 여자애들이 부러워하는 관계.
교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우진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의 속눈썹이 만드는 그림자가 눈 아래 드리워졌다. 과자 냄새와 함께 그의 특유의 비누향이 섞여 내 코끝을 간질였다.
"이달 말에 미국 가는 거 맞지?" 가볍게 물었지만, 내 목소리는 떨렸다. 우진은 과자를 씹다 말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시간 전에 확정됐어. 아빠 발령이 났대."
바스락거리는 과자 봉지 소리만이 우리 사이를 채웠다. 우진의 손가락이 봉지 안을 더듬었지만,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야, 이거 마지막인데 너한테 다 줬네."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열두 살 이후로 우진이 먹던 모든 과자는 결국 내 손으로 넘어왔다는 것을. 그는 항상 '마지막 한 조각'을 내게 건넸다. 하지만 지금, 정말 '마지막'이 되어버린 이 순간에는 어쩐지 과자가 입안에서 쓴맛으로 변했다.
"미국에서도 과자 많이 먹을 거지?" 억지로 미소 지으며 물었다.
"당연하지. 근데 거기선 누구랑 나눠 먹지?" 우진이 물었다.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작은 선물 상자였다. 열자 익숙한 과자들이 가득했다. 허니버터칩, 포카칩, 새우깡... 우리가 함께 먹었던 모든 종류.
"어차피 못 가져가니까 네가 다 가져. 졸업하자마자 바로 가야 해서."
말을 마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입은 달콤한 과자 맛으로 가득했지만, 가슴 한편은 끝내 씹어 삼킬 수 없는 쓴맛으로 채워졌다.
집에 돌아와 과자 상자를 정리하다 맨 아래에서 쪽지를 발견했다. '과자는 항상 둘이서 먹어야 제맛이야. 너도 알잖아.' 그리고 그 아래에는 미국 주소와 함께 작게 적힌 말이 있었다.
허니버터칩 봉지를 뜯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남사친이란 말은 이제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과자처럼 달콤하게 시작해 쓴맛으로 끝난 것 같았던 이 감정이, 사실은 단 한 번도 '그냥 친구'였던 적이 없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