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과자이별

과자 선반에 놓인 이별의 맛

스물여덟 번째 생일날, 유리는 편의점 과자 선반 앞에서 세상의 모든 이별이 이곳에 모여있다는 묘한 확신을 가졌다. 과자 봉지들이 자신을 향해 조용히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날 선택해, 그리고 기억해, 네가 처음 맛봤던 그 순간을."

달콤한 카라멜 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초코바 앞에서 유리는 멈춰 섰다. 이 과자는 대학교 1학년 때 도서관에서 만난 태우와 함께 먹었던 것이다. 껍질을 벗길 때마다 바삭한 소리, 초콜릿이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감각, 그리고 그의 웃음소리가 한데 뒤섞여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다음 줄로 시선을 옮기자 빨간색 감자칩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퇴근길 매일 그녀를 기다리던 준호가 좋아했던 맛이었다. 봉지를 살짝 만지자 손끝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준호와의 3년이 순식간에 압축되어 흘러갔다. 입 안 가득 짭조름한 맛이 번지는 듯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가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유리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점원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아... 아니요, 그냥요." 유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유리는 천천히 작은 젤리 봉지를 집어들었다. 새콤달콤한 이 젤리는 고등학교 때 첫사랑 민수와 함께 나눠 먹었던 것이다. 그 맛을 떠올리자 입안에 침이 고였다. 쓰디쓴 첫 이별의 맛도 함께.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이 이 고요한 시간 속에 유리를 감싸고 있었다. 문득 자신이 아직도 지나간 사랑의 맛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깨달아졌다. 이별했던 모든 사람들이 남긴 맛, 그 기억들을 과자 봉지에 담아 보관하듯 마음속에 고이 간직해왔던 것이다.

유리는 손에 들고 있던 젤리 봉지를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대신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초록색 포장의 새로운 과자를 집어들었다. 봉지를 열자 낯선 향이 코끝을 스쳤다. 첫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 예상치 못한 달콤함과 바삭함이 입안을 채웠다.

계산대로 향하며 유리는 미소 지었다. 새로운 과자의 맛처럼, 아직 맛보지 못한 사랑도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편의점을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과자 봉지가 그녀의 가방 속에서 살짝 바스락거렸고, 그 소리는 마치 앞으로 쓰여질 새로운 이야기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