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고민 상담소
때때로 죽음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날은 내가 귀신이 된 바로 그날이었다. 내 몸은 무덤 속에 있었지만, 영혼은 여전히 이 세상을 떠돌며 미완성된 인생의 고민들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보이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민뿐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방황했다. 창백한 달빛이 내 반투명한 형체를 통과할 때면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벽을 통과하고 천장을 뚫고 다니며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민을 엿듣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철컥거리는 사슬 끄는 소리나 으스스한 웃음소리를 낼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저 있었고, 보았고, 들었다.
"엄마가 이해해주지 않아요." 열여섯 소녀의 방에서.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 사십 대 남자의 소주잔에서.
"그가 날 사랑하는지 모르겠어." 스물셋 여성의 일기장에서.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자주 찾던 오래된 단칸방에 사는 젊은 작가가 컴퓨터 앞에서 중얼거렸다. "누군가 내 고민을 들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순간, 나는 그의 화면 속으로 슬며시 녹아들어갔다. 검은 바탕에 하얀 글자로 타이핑했다. '들어줄게요.'
그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고민 상담사예요.' 내가 답했다.
"귀신 같네요." 그가 웃었다.
'맞아요.' 나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날부터 나는 '귀신 고민 상담사'가 되었다. 컴퓨터, 스마트폰, 때로는 오래된 라디오를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더 솔직했다. 이상하게도 내가 귀신이라고 말해도 대부분은 장난이나 비유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요?"였다. 살아있을 때 한 번도 찾지 못했던 답을 나는 죽어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을 느껴보세요. 당신이 숨 쉬는 것, 그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귀신인 내가 가진 가장 큰 고민은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면서도 내 자신의 미련은 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밤마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며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내가 못다 한 삶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오늘 밤, 또 한 명의 외로운 영혼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화면에 비치는 그의 얼굴에는 깊은 고민의 주름이 새겨져 있다. 나는 그의 화면에 조심스레 나타나 물어본다. '무슨 고민이 있나요?' 그리고 기다린다, 살아있는 동안 느끼지 못했던 무한한 인내심으로. 어쩌면 그의 고민을 들으며, 나는 나 자신의 가장 큰 고민에 대한 답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