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타는 귀신: 죽음보다 애매한 관계
쑥스럽게 웃는 그의 눈동자에서 내가 본 건 130년 된 영혼의 그림자였다. 살아있는 사람과 썸을 타기 시작한 날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지만, 그날 밤이 절정이었다. 한여름 밤의 부산 광안리 해변, 수백 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오직 나만 보이는 그를 발견했을 때, 나는 그저 인기 없는 카페의 바리스타였다.
"나 강현우라고 해요. 매일 당신이 내리는 아메리카노를 지켜보는 사람." 그는 말했다. 순간 차가운 바닷바람이 목덜미를 스쳤고, 이상하게도 그의 뒤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모두 그를 통과했다. 카페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인데도 왠지 낯설지 않았다.
"혹시... 우리 전에 만난 적 있나요?" 내 질문에 그는 오래된 회중시계를 꺼냈다.
"네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난 여기 있었어. 내 시간은 1893년에 멈췄거든."
그날부터 우리는 기묘한 '썸'을 타기 시작했다. 산책, 영화 관람, 카페에서의 대화... 그는 물리적으로 아무것도 만질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컵의 커피는 식어갔고, 내 방의 전등은 그가 원할 때 깜빡였다. 내 인생의 첫 '썸'이 130년 된 귀신과의 관계라니.
"관계의 정의가 뭐라고 생각해?" 어느 날 밤 그가 물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살아있는 사람들끼리도 그 정의를 두고 평생 싸우는데..."
가을이 깊어갈수록 그와의 관계도 깊어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끌렸지만, 그것이 무엇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아무도 몰랐다. 이 '썸'이라는 관계의 애매함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더욱 복잡해졌다.
"내일 내 생일이야... 아니, 정확히는 죽은 날이지." 그가 말했다. "마지막 소원이 있어."
다음 날 새벽, 우리는 그가 죽은 절벽 위에 서 있었다. 동이 트기 직전, 짙은 안개 속에서 그의 윤곽이 더욱 선명해졌다.
"한 번만 안아줄래?" 그가 물었다. 망설임 없이 나는 그를 향해 팔을 벌렸다. 놀랍게도, 그 순간만큼은 그의 몸이 실체를 가졌다. 차갑지만 단단한 그의 품에 안겼을 때, 나는 알았다. 이게 사랑인지, 미련인지, 아니면 그저 삶과 죽음 사이의 미스터리한 '썸'인지.
"내가 그동안 찾던 건 죽음 너머의 위안이 아니라, 너였어." 그의 목소리가 안개처럼 흩어지며 그는 사라졌다. 태양이 수평선 위로 떠오르고, 나는 홀로 남았다.
오늘도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내리며 창밖을 바라본다. 간혹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면 창문이 흐릿하게 서리고, 테이블 위 커피가 저절로 식는다. 아직도 우리는 '썸'을 타는 중일까? 죽음보다 더 불분명한 이 관계의 이름을 나는 아직도 정의내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