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과의 재밌는 동거
아파트 벽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처음엔 이웃집 아이의 것이라 생각했다. 이사 온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밤, 나는 그 웃음소리의 주인공이 벽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 김하늘이야. 1997년부터 여기 살고 있어." 거실 한가운데 서 있던 소녀가 말했다. 반투명한 그녀의 몸은 달빛에 미세하게 일렁였다. 비명을 지르려던 나의 입을 그녀가 손짓으로 막았다. "소용없어. 여기 방음 엄청 잘 돼. 내가 벌써 몇 년째 실험 중이거든."
우리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됐다. 하늘은 21살에 이 아파트에서 숨을 거뒀고, 그 이후로 계속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존재였다. TV 채널을 마음대로 바꾸고, 내 알람을 꺼버리는 장난을 쳤지만, 동시에 집에 도둑이 들려고 할 때마다 그들을 벽에서 울리는 웃음소리로 쫓아내기도 했다.
"살아있을 때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거든." 하늘이 어느 날 밤 고백했다. "근데 부모님이 반대해서... 법대 다니다가 스트레스로 죽었어. 웃기지? 웃음을 주고 싶었던 사람이 웃지 못해 죽다니."
그날부터 나는 하늘을 위해 매일 밤 스탠드업 코미디 영상을 틀어줬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영상을 보다가도 가끔은 눈물을 흘렸다. 귀신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새로웠다. 그녀의 눈물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서 증발했다.
"인간들은 항상 귀신을 무서워해. 하지만 우리도 그저 미완의 꿈을 품은 영혼일 뿐이야." 하늘의 말에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네 꿈을 이뤄주고 싶은데, 방법이 있을까?"
하늘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 그럼 내가 쓴 대본이 있는데... 너 유튜버잖아. 한번 찍어볼래?"
우리는 귀신과 인간의 합작 코미디 채널을 시작했다. 나는 하늘이 짜준 대본으로 영상을 찍었고, 그녀는 특수효과를 담당했다. 물건이 공중에 떠다니고, 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진짜 귀신이 나오는' 코미디 영상은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다.
6개월 후, 채널 구독자는 백만 명을 넘었다.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났다.
"이제 떠나야 할 것 같아." 어느 밤 하늘이 말했다. "내 꿈을 이루었으니까."
나는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 밤, 우리는 함께 코미디 영화를 보며 웃었다. 다음 날 아침, 하늘은 사라졌다. 벽에서 들리던 웃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내가 혼자 영상을 편집할 때면 모니터에 하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 그리고 내 채널의 댓글에는 여전히 "영상에 나오는 반투명한 여자는 누구예요?"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그저 미소로 답한다. 어쩌면 죽음조차도 진정한 꿈과 웃음 앞에서는 그저 재밌는 에피소드일 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