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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판타지

귀신과 판타지: 그림자의 경계

내 침대 밑에 사는 귀신은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 밤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리고, 가끔은 감탄사나 웃음소리까지 새어 나온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이제는 일종의 동거인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무슨 책 읽어?" 용기를 내어 물었던 그날,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침대 밑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달랐다. 창백한 얼굴에 검은 원피스, 그리고 긴 머리카락 대신, 안경을 쓰고 헤어진 스웨터를 입은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손에는 닳고 닳은 판타지 소설 한 권을 들고 있었다.

"드래곤이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야. 넌 이런 거 안 좋아해?" 그녀의 목소리는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같았다.

매일 밤, 우리는 판타지 소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있을 때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병으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떠났다고. 그래서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훔쳐 듣는 게 유일한 취미라고 했다.

"내가 쓰던 소설이 있어. 완성하지 못했는데... 혹시 너가..."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게 나는 귀신의 대필 작가가 되었다. 밤마다 그녀가 구상한 판타지 세계를 노트에 옮겨 적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마법과 용, 요정들의 세계. 그녀의 상상력은 놀라웠다.

소설이 완성되어가면서, 그녀의 모습도 점점 희미해졌다. "네 도움으로 마지막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됐어," 그녀가 말했다. "이제 떠나야 할 것 같아."

마지막 장을 쓰는 날, 그녀는 완전히 투명해져 있었다. "출판사에 보내줘. 네 이름으로."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희미했다.

"안 돼, 이건 네 이야기야." 내가 말했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일 년 후, 그녀의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책 표지에는 두 개의 이름이 나란히 있었다. 하나는 내 이름, 다른 하나는 50년 전 이 집에서 죽은 소녀의 이름이었다.

가끔, 밤중에 책상에 앉아 새로운 이야기를 쓰다 보면, 어깨 너머로 누군가 내 글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때마다 나는 미소를 짓는다. 우리의 판타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