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MBTI: 유령도 성격이 있다
귀신이 된 후 처음 받은 안내문에는 "MBTI 검사 후 배정" 항목이 있었다. 살아있을 때도 자기 성격도 모르고 살더니, 죽어서까지 뭘 알겠냐는 듯한 빈정거림이 느껴졌다. 나는 이 황당한 사후세계 오리엔테이션에서 진지하게 문항들에 답했다. "원한을 품고 복수하는 것과 그냥 넘어가는 것,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같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검사 결과: ISFP-망자형. 조용히 한 명만 홀리는 타입. 혼자서 일을 처리하며 갑작스러운 출현보다는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죽어서까지 이렇게 내향적이어야 한다니. 그래도 깜짝 놀래키는 ENFJ-공포형보다는 나은가 싶었다.
"그래서 내가 어디에 배치되는데요?" 안내 귀신에게 물었다.
"당신은 외딴 시골집 다락방에 배정됐습니다. 가끔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음악 상자를 울리는 정도의 활동이 허용됩니다."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ISFP라지만 너무 심심한 자리였다. 그래도 규칙은 규칙. 나는 배정받은 다락방으로 향했다.
시간이 흘러 한 가족이 이사왔다. 그중 사춘기 소녀가 내 다락방을 차지했다. 그녀는 매일 밤 노트북으로 MBTI 관련 콘텐츠를 보며 웃었다. "나는 확실한 ENFP야. 넌 뭐니?" 친구와 통화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유형을 자랑했다.
나는 호기심에 그녀의 노트북에 접속해 "귀신의 MBTI는 ISFP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다음 날, 그녀는 친구들을 불러모아 이 메시지를 보여주며 흥분했다. "우리 집 귀신의 MBTI가 ISFP래! 대박!"
이후 그녀는 매일 밤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 들어볼래?" "네가 ISFP라면 이런 음악 좋아하지 않을까?" 처음으로 누군가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화를 나누려 했다.
한 달 후,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관찰 결과, 당신의 MBTI는 ISFP가 아닌 INFP-몽상가형으로 재분류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바닷가 등대로 재배치됩니다."
떠나기 전날 밤, 소녀의 노트북에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안녕, 너와 대화할 수 있어 좋았어. 나는 재배치되어 떠나야 해. ISFP가 아니라 INFP였나 봐." 다음 날 아침, 그녀는 화면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가지 마! 내가 MBTI 검사를 다시 만들어줄게!"
그날 밤, 본사에서 또 연락이 왔다. "특별 요청이 접수되었습니다. 소녀가 직접 만든 MBTI 검사 결과, 당신은 'BFFL-영원한친구형'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는 공식 유형은 아니지만, 예외적으로 현 위치 유지를 허가합니다."
죽어서도 분류되고 배치되는 세상이지만, 가끔은 분류를 거부하는 따뜻한 마음이 시스템의 빈틈을 메우는 법이다. 오늘도 나는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다. 어쩌면 귀신의 진짜 MBTI는 살아있는 이들의 마음속에 새겨지는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