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남사친: 흐림에서 맑음으로
비가 유리창을 두드리던 날, 진우의 문자가 도착했다. "오늘 날씨만큼 우울해?" 그가 항상 그렇듯 내 기분을 정확히 짚어냈다. 10년 지기 남사친의 특권이었다.
우산을 쓰지 않고 카페로 달려갔다. 머리카락이 빗물에 흠뻑 젖었지만, 이상하게 상쾌했다. 진우는 이미 창가 자리에 앉아 두 잔의 아메리카노를 놓고 있었다. 얼굴에 물기가 흐르는 나를 보며 그가 웃었다.
"또 우산 안 가져왔구나.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네."
물기를 닦아내며 의자에 앉았다. 비 냄새가 진한 카페 내부는 따뜻했고, 창문에 맺힌 물방울들이 바깥 풍경을 왜곡시켰다. 언제부터인가 진우의 존재는 내 인생의 일기예보 같았다. 흐린 날 나타나 맑음을 선물해주는.
"사실 할 말이 있어서." 그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달 말에 호주로 떠나. 일 년 계약이야."
그 순간 카페 내부의 온도가 갑자기 내려간 것 같았다. 귓가에 '일 년'이라는 단어만 맴돌았다. 창문 밖으로 비가 더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진우가 서둘러 덧붙였다.
"호주의 날씨는 여기보다 좋대. 네가 좋아할 만한 햇살 가득한 곳이야."
그의 말에 웃으려 했지만 입꼬리가 떨렸다. 10년 동안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살았다. 같은 비에 젖고, 같은 햇살에 웃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다른 하늘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비 오는 날 누구랑 카페에 앉아있어?" 억지로 농담을 던졌다.
진우가 내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호주에서도 비가 오면 네게 문자할게. '오늘 날씨만큼 우울해?'라고."
그때 카페 창문으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비는 그쳤고, 햇빛에 젖은 거리가 반짝였다.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우리 둘 다 창밖을 바라봤다.
"날씨 앱에는 비가 오후까지 계속된다고 했는데." 진우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10년 동안 진우는 날씨가 아니라 나의 일부였다. 남사친이라는 편한 레이블 아래 가려진 진실이, 갑자기 맑아진 하늘처럼 선명해졌다.
"진우야, 나도 할 말이 있어."
카페를 나서며 우리는 다른 날씨 속을 걸었다. 때로는 관계도 날씨처럼 예측할 수 없는 것. 비가 그치고 난 후의 공기처럼, 우리 사이에 무언가가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