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썸타기: 비가 내리는 밤의 우산 속
거짓말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운명이라면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날씨에 우산도 없이 그녀와 버스정류장에 서 있게 될 줄은. 휴대폰 일기예보는 내 마음만큼이나 신뢰할 수 없었다.
"우산 안 가져왔어요?" 민지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내가 좋아하는 살짝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세 달째 썸을 타고 있지만, 아직 고백은 꺼내지 못했다.
"네, 아침에 맑았으니까요." 내 대답은 변명처럼 들렸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도로 위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이 가로등 빛에 반사되어 작은 별처럼 빛나다 사라졌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어느새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민지는 가방에서 작은 접이식 우산을 꺼냈다.
"같이 쓸래요? 좀 작긴 한데..." 그녀가 우산을 펼치며 제안했다.
우리는 좁은 우산 아래 어깨를 맞대고 서 있었다. 비 냄새와 그녀의 살짝 달콤한 향수 냄새가 섞여 내 감각을 마비시켰다. 가슴이 너무 빨리 뛰어서 그녀도 들리지 않을까 걱정됐다.
"날씨 앱에서는 비 확률이 10%라고 했어요." 민지가 웃으며 말했다. "날씨도 사람 마음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 "사람 마음이요? 예를 들면요?"
"음... 예를 들어 갑자기 친구에게 호감이 생긴다거나..."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우리 사이에 침묵이 내렸다. 빗소리만이 우산을 두드렸다. 서로의 팔이 닿을 때마다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먼저 말씀하세요." 내가 양보했다.
민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사실 오늘 비 소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일부러 작은 우산만 가져왔고요."
나는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장난기와 함께 뭔가 더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왜요?" 내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날씨 앱은 가끔 틀리지만..." 그녀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 마음은 확실해요. 우리 이제 썸 좀 그만 타면 안 될까요?"
빗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날씨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산 아래 우리의 세계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날씨가 가장 완벽한 타이밍을 만들어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