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의 병원 약속
그가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날, 나는 그제야 남자와 친구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 깨달았다. 윤재는 항상 '남사친'이라는 편리한 레이블 아래 존재했다. 열다섯 살 때부터 십 년간, 그저 내 옆의 그림자처럼 당연한 존재였다.
"병원비 걱정은 마. 내가 보험 처리해 줄게." 병실 의자에 앉아 샐러드를 먹으며 내가 말했다. 병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윤재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소독약 냄새와 기계음이 잔잔히 흐르는 4인실, 그는 말없이 내 샐러드를 쳐다보았다.
"너야말로 그 다이어트 좀 그만해. 샐러드만 먹으니 얼굴색이 내 것보다 안 좋네." 산소호흡기를 끼고도 여전히 내게 잔소리하는 윤재가 미웠다. 교통사고로 갈비뼈 세 대가 부러지고 폐에 구멍이 난 사람이 걱정해야 할 건 자기 몸이지, 내 다이어트가 아니었다.
"늘 이런 식이었지. 네가 아플 때도 내 걱정부터 하고."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윤재의 침대 옆 모니터에서 심장박동이 규칙적으로 찍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병실 선반에는 그의 부모님이 가져온 과일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복도에서는 간호사들의 부산한 발소리와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사고 당시에... 내가 네 전화를 받고 있었잖아." 윤재가 힘겹게 말했다. "네가 '오빠랑 헤어졌어'라고 울면서 말하는데, 내가 그때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거든."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 울음소리가 그의 주의를 분산시켰고, 그래서 차를 못 봤다는 말인가? 침대 옆 수액 방울이 똑, 똑, 떨어지는 소리가 병실을 채웠다.
"내 탓이라고? 이게 다 내 전화 때문이라고?" 목소리가 갈라졌다.
윤재가 힘없이 웃었다. "아니, 바보야. 그게 아니라... 네가 울 때 뭐라도 바로 해주고 싶어서 달려간 거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네가 제일 먼저 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모니터의 심장박동 그래프가 불규칙하게 흔들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남사친'이라 부르던 이 사람은, 내가 울 때면 언제나 달려왔다는 것을. 열다섯부터 스물다섯까지, 다른 남자들이 내 인생에 들어왔다 나갈 때마다, 그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미안해... 네 곁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네가 내 곁을 지키게 됐네." 윤재의 말에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병원 창밖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 봄바람이 들어왔다.
병실 문을 열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면회시간 5분 남았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윤재의 손을 잡았다. 마른 그의 손등에 정맥주사 자국이 선명했다. 내일도, 모레도, 그가 퇴원할 때까지 올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이후에도, 우리가 서로에게 '그냥 친구'가 아닌 것을 인정하는 날까지, 계속 그의 곁을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