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과 부모님 사이
"네 부모님이 나를 싫어하는 거 같아." 윤우가 내 침대 끝에 앉아 말했다. 열일곱 해를 살아오면서 이렇게 당혹스러운 순간은 처음이었다. 내 방의 창문 너머로 황혼이 번져갔고, 엄마의 저녁 준비하는 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윤우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내 옆자리였다. 그때는 서로의 연필을 뺏고 지우개를 던지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소통 방식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 그는 내 일기장을 제외하고 내 모든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남자사람친구. 남사친. 그게 우리 관계의 공식 이름이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물었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엄마가 윤우에게 건네는 어색한 미소, 아빠가 그를 볼 때마다 던지는 '몇 시에 집에 가니?' 같은 질문들. 그들의 경계심은 최근 몇 개월 사이 점점 두꺼워지고 있었다.
"너희 아버지가 어제 내게 '유진이랑 너무 가까워지지 마라'고 하셨어." 윤우의 말에 내 심장이 한 박자 뛰었다.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왜 그러셨대?" 내 목소리가 떨렸다.
"사람들이 오해한대. 우리가 사귀는 줄 안대." 윤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말투는 가볍게 들렸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침묵 속에 잠겼다. 내 책상 위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방을 채웠다.
"유진아, 저녁 먹으러 내려오렴!" 엄마의 목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윤우도 같이 먹고 가!" 이 말에 나는 윤우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 의문이 가득했다.
저녁 식사는 어색했다. 아빠는 윤우에게 진로에 대해 물었고, 엄마는 평소보다 많은 반찬을 그의 앞에 놓았다. 부모님은 우리 사이를 의심하면서도, 윤우를 가족처럼 대하고 있었다. 이 모순된 상황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식사 후, 윤우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너희 부모님, 사실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야. 그냥... 네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시는 거지." 그의 목소리에는 내가 한 번도 듣지 못한 어떤 진지함이 묻어있었다.
"무슨 말이야?" 내가 물었다.
윤우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유진아, 나 다음 달에 미국으로 유학 가기로 했어. 1년이나 2년 정도." 그 순간, 내 세계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너희 부모님은 알고 계셔. 내가 한 달 전에 말씀드렸거든."
현관문이 닫히고, 나는 부모님을 찾아 거실로 갔다. 그들은 마치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엄마의 눈에는 이미 내 마음을 읽은 듯한 따뜻함이 있었다. 아빠는 말없이 내 옆자리를 토닥였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부모님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 내 일기장에 적힌 비밀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