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의 비밀, 열리지 않는 문 너머에서
"있잖아, 나 오늘 죽을 것 같아." 재현이가 내게 문자를 보낸 건 새벽 세 시 정각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이웃집에 살던 남사친의 메시지치고는 너무 무거웠다. 평소의 장난기 있는 이모티콘 하나 없이, 그저 담백한 글자들만이 내 화면을 차갑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 재현이의 집 창문은 늘 켜져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손잡이를 잡자 문은 쉽게 열렸다. 열쇠를 걸지 않은 걸 보면 나를 기다린 것일까. 거실은 고요했고, 방문 앞에 섰을 때 희미한 빛이 문틈 사이로 새어 나왔다.
"재현아?" 내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흔들렸다. 대답은 없었다.
문을 열자 재현이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수십 개의 편지봉투가 흩어져 있었다. 모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봉투마다 날짜가 쓰여 있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5년 전이었다.
"이게 뭐야?" 목소리가 떨렸다.
재현이는 웃음과 울음 사이 어딘가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죽을 것 같다고 한 이유... 이걸 보여주려고. 내일이면 다른 도시로 떠나니까."
첫 번째 편지를 열었다. '오늘 네가 웃는 모습이 예뻐서 심장이 멈출 뻔했어.' 다음 편지. '네가 다른 남자와 이야기할 때마다 질투에 미칠 것 같아.' 또 다음 편지. '널 사랑한다는 말, 평생 해보지 못할 것 같아서 여기에라도 쓴다.'
봉투들 사이에서 색이 바랜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나왔다. 우리의 추억들. 놀이터, 학교 축제, 그리고 졸업식. 모든 사진 속에서 재현이는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웃고 있었다. 내가 카메라를 보며 웃을 때도, 그의 눈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었다.
"15년 동안 말 못 했어. 우정이 깨질까 봐. 네가 불편해할까 봐. 그런데 떠나기 전에 적어도 이것만은 알려주고 싶었어."
창문 너머로 새벽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우리 사이의 적막이 견딜 수 없이 무거웠다. 내 손에는 아직 열지 않은 마지막 편지가 들려 있었다. 어제 날짜였다.
"열어봐도 돼?" 내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했다.
재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봉투를 뜯자 단 한 줄의 문장이 나왔다.
'날 잊지 못하겠다면, 역에서 날 찾아와.'
방을 나서면서 깨달았다. 남사친이라는 단어 뒤에 숨겨둔 진실은, 때로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문이 가장 열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오늘 아침, 나는 그 문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