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과의 여름: 만약 그날, 네가 돌아왔다면
여름이 시작되던 날, 열 살짜리 내 심장은 새 운동화를 신은 것처럼 가벼워졌다. 우리 동네에 이사 온 민준이가 내 짝꿍이 되었기 때문이다.
산딸기를 따던 여름, 자전거를 배우던 여름, 별을 세던 여름. 우리의 모든 여름은 서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는 '남사친'이란 말도 몰랐다. 그저 내 편인 남자아이였을 뿐.
"윤아야, 내가 서울로 전학 간대." 열다섯 번째 여름, 민준이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슬픔을 느꼈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서서 우리는 마지막 약속을 했다. "스무 살 여름에 이 벤치에서 다시 만나자."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민준이는 내 세계에서 '남사친'이란 카테고리로 분류되었다. 가끔 연락하는, 그러나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존재. 서로의 연애 이야기를 들어주고, 시험 결과를 공유하고, 인생의 갈림길에서 조언을 구하는 사이.
스무 살 여름, 약속의 날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날 아침, 민준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미안해 윤아야, 오늘 못 갈 것 같아. 급한 일이 생겼어."
실망감에 혼자 그 벤치에 앉아 있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공원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그때 들려온 목소리.
"혹시... 윤아 맞아?"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에 서 있는 건 민준이가 아닌, 현우였다. 중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던 남자아이. 그는 내가 민준이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민준이 지금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어. 내가 대신 알리러 왔어."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병원으로 달려가 중환자실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민준이가 깨어났을 때, 그의 첫마디는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였다.
그때 깨달았다. 내 마음속에서 민준이는 결코 '그냥 남사친'이 아니었다는 것을. 사고 후 그의 재활을 돕는 동안, 우리 사이에 놓인 경계선은 서서히 흐려졌다.
다음 여름, 우리는 다시 그 벤치에 앉았다. 이번엔 둘 다 약속을 지켰다.
"윤아야," 민준이가 물었다. "남사친에서 남자친구로 승격시켜 줄래?"
웃음이 터졌다. 열 살 때부터 스물한 살까지, 모든 여름이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던 것만 같았다. 시간은 우리를 갈라놓았다가, 더 단단하게 묶어주었다.
어쩌면 인생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가장 소중한 것들은 잃을 뻔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것.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듯, 모든 관계에도 계절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여름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