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의 포켓몬: 유리병 속 우리들의 세계
유준이가 포켓몬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던 날, 나는 그가 마지막으로 웃던 모습을 보았다. 우리 사이에 '남사친'이라는 단어가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우리 관계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단어였다.
"이건 그냥 게임이 아니야, 세은아. 이건 내 삶이야." 유준이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그저 청소년기의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배경으로, 게임보이의 푸른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는 동안, 나는 단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우리의 교실은 항상 소음으로 가득했지만, 점심시간이면 언제나 나와 유준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나는 책을 읽고, 그는 포켓몬을 잡았다. 가끔 "내 피카츄가 레벨 업했어!"라고 외칠 때면, 나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의 작은 승리를 축하해주었다. 그때의 유준이의 미소는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했다.
학교 축제 날, 유준이는 갑자기 나를 옥상으로 불렀다. 살짝 떨리는 손으로 작은 포켓몬 피규어가 담긴 유리병을 내밀었다. "이거... 네가 좋아하는 이상해꽃이야. 내가 한 달 동안 모은 용돈으로 샀어."
그날 밤, 문자 한 통이 왔다. "포켓몬의 세계는 현실보다 단순해. 포획하고, 키우고, 가끔은 떠나보내. 하지만 그들은 항상 내 곁에 있어. 세은아, 너는 내 현실 속 포켓몬이야. 절대 포획할 수 없는."
다음 날, 유준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집이 비어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의 해외 발령으로 급하게 이사를 갔다고 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여전히 그 유리병 속 이상해꽃이 있다. 어제는 처음으로 유준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짧은 메시지였다. "이제 내가 포켓몬 마스터가 됐어. 처음으로 잡은 포켓몬의 이름은 '세은'이었어."
오늘 아침, 오랜만에 게임샵에 들어갔다. 포켓몬 게임을 집어들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포켓몬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이자, 언제든 떠나보낼 수 있는 추억. 게임을 시작하며 내 첫 포켓몬의 이름을 입력했다. '유준'. 남사친이라는 단어로는 결코 담을 수 없었던 그 소년의 이름을.